1003 born again
너에게 보내는 마음/따스한 치유

많은 방황과 고민 끝에 오늘 드디어 세례를 받았다. 예전에 블로그에 오시던 분이 믿음에 대해서 물어봤었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그리고 궁금한 점이 있다면 언제든지 댓글이나 이멜 슝슝 semeeyoon@gmail.com
      
       제가 기억나는 제일 어렸을 때 모습은 유치원도 다니기 전 외갓집 식구들과 한 동네에서 자랐던 것입니다. 외할머니를 비롯해 이모들이 모두 불교 신자셨고, 부모님과는 함께 종교활동을 하지 않았지만 할머니의 손을 잡고 절에 갔던 것이 기억납니다. 맞벌이 하시는 부모님 대신 그분들이 저를 돌보아주셨고 불교 유치원에 다녔습니다. 기자셨던 아버지 덕분에 여기저기 이사를 다니며 그 후로 다행히도 정기적으로 절에 다니지 않게 됐습니다. 시간이 지나 고등학생이 되어서야 주님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중학교 3년을 가족과 미국에서 보낸 후 한국으로 귀국했을 때 선행학습이 되어 있지 않아 적응하는데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처음엔 제 능력으로 특목고에 입학한 것이라고 자만했지만 금새 자신감을 잃었습니다. 그러다가 여학생들이 저녁마다 모이는 기도모임에 나가게 됐습니다. ‘왜 내가 여기에서 공부하게 된 것일까’하고 고민을 하고 있는 시기였는데 우리의 머리카락 갯수까지 알고 계신 전지전능한 하나님의 저를 위한 계획도 하셨음에 위로 받았습니다. 항상 삶에서 뭔가 빠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었고, 삶이 허무하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누가복음 12장 말씀을 놓고 기도하자 다니지 않을 수도 있었던 산골마을에서 학교생활을 하게 된 것 이유를 알게 하셨습니다. 그 곳에서 힘들지만 주님이 주시는 감당할 만큼의 고난을 통해 제 능력의 한계와 죄성을 인정하고 온전히 예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도록 인도하셨음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렇게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얽매였던 세상의 기준으로부터 자유로워져 성적을 위한 고등학교 생활이 아닌 예수님과 함께 하는 고등학교 생활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제 자신을 위함이 아닌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겠다고 생각하니 주님의 능력 부어주심으로 어디에 있던지 살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겼고, 겸손한 마음으로 모두를 대할 수 있었습니다.

          컬럼비아에 수시로 지원할 때도 세계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타락하는 미국 문화의 중심지인 뉴욕에서 공부하며 하나님의 일꾼이 되고 싶다고 기도했습니다. 합격 후 한국 교회와 미국 교회 여러곳을 옮겨 다니며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제대로 드리지 못하니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 점점 어려워졌습니다. 그러다가 학교 필수 과목인 서양철학 수업을 듣는 과정에서 방황도 했지만 그 시간 동안 원죄에 대해서 다시 한번 인지하는 경험을 했습니다. 철학 수업을 들으며 제 힘으로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좋은 사람, 착한 사람으로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교만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리고는 예수님을 붙잡고 살지 않는 동안 질투와 시기로 가득차는 제 모습을 직면하게 됐습니다. 저의 악함을 처절히 본 후에야 예수님 없이는 이웃을 진정으로 사랑할 수 없음을 깨닫고 구원자 주신 주님께 무한한 감사함을 고백했습니다. 이 경험을 하는 과정에서 CMC에 대해서 알게 됐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대학원을 지원하는 과정에서도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가겠다고, 대학원이 되지 않는다면 뜻하신 곳에 가겠다고 모두 내려놓을 수 있었습니다.

          고등학교 때부터 주신 아프리카에 대한 소망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다른 길이 있는건지 하나님의 큰 뜻을 모두 헤아릴 수 없지만 지속가능한 발전 공부를 컬럼비아에서 계속 하게 하셔서 앞으로 5년은 더 뉴욕에 있게 됐습니다. 많이 부족하지만 어디서 무슨 일을 하더라도 사람은 사랑하고, 하나님은 사랑하고 의지하는 그리스도인이 되겠다고 고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