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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결고리
너에게 보내는 마음/따스한 치유

복음과 사명자행전의 연결고리 - 기억할 17가지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다

고린도전서 9:16 


내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은 복음에 참여하고자 함이라

고린도전서 9:23 


이와 같이 주께서도 복음 전하는 자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명하셨느니라

고린도전서 9:14


요한복음 21장: 

갈릴리(고리)란 의미, 평소 우리의 삶의 현장. 이곳이 땅끝의 출발점인 동시에 목적지. 


1. 사명자는 자기 삶의 현장이 욕망의 바다임을 자각해야 한다. 

디베랴 호수 = "황제의 바다" 라는 뜻 (로마 황제 이름을 붙인 이름)


2. 사명자는 자신이 누군가를 어디로 이끌고 있는지, 누군가를 왜 따라가고 있는지 자문해야 한다. 

(사명자는 언제 어디에서나 진리를 좇으며, 누군가를 진리의 물가로 인도하는 사람)


3. 사명자는 현재형으로 임해 계시는 주님에 대해 꺠어 있어야 한다. 

(그리스도인의 삶의 성숙은 언제나 현재형으로 자신과 함께하고 계시는 주님에 대해 깨어 있을 때에만 가능하다.

영성은 언제나 내 삶의 현장에서 나와 함께 계시는 주님에 대한 통찰력, 그 주님에 대한 깨어 있음이다.)

다윗 시편 23:4


4. 사명자는 주님 앞에서 낮고 낮은 어린아이의 마음이어야 한다. 

(언제나 주님만 의지하여 / 고후 12:9-10/ 

어린아이처럼 불완전한 자신의 결함과 약함을 잊지 않는 한, 

자신의 삶 속에서 현재형으로 임해 계시는 주님만을 의지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5. 사명자는 그물이 찢어지면 안 된다

(주님 안에서는 언제나 다시 시작할 수 있다 / 사 43:19-21)

제자들이 잡아 올린 물고기

연결고리  (익뒤스는 이에수스-예수, 크리스토스-그리스도, 테오스-하나님, 휘오스-아들, 소테르-구원자)로 이루어짐. 

곧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요 구원자시다 라는 신약성경의 핵심).   

인간의 야망이 아니라 예수님만 굳게 붙잡고 살아감으로 세월을 아끼고 세월을 건져 올리는 길.  

예수님 안에서는 어떤 그물도 찢어지지 않아요. 


6. 사명자는 예의의 사람이어야 한다. 

예의를 갖추고 세족식을 후에 말씀 전하신 하나님처럼. 

하나님께서 하찮은 우리에게 먼저 예의를 다해 주셨기 때문에 우리도 하나님과 예의를 갖추는 것.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은 우리 자신은 죽고 우리 가운데서 하나님만 드러나시게 하는 것. 

사명에 동분서주하느라 예배를 소홀히 할 수 밖에 없다면, 

그대는 그대 자신을 위한 자기 사명자일 뿐 하나님을 위한 하나님의 사명자는 아님.


7. 사명자의 사명감은 배신감을 압도해야 한다. 

(잠에 곯아떨어진 제자들에 대한 이해심과 배려심이 크셨던 예수님. 

연약함, 무지함, 어리석음 때문에 물고기 잡고 있던 제자들을 위한 조반을 준비하실망정 배신감에 압도당하지 않으셨다. 

주님의 사랑과 사명감이 그 상황을 압도하고 초월했다. 모세도.)


8. 사명자는 주님의 은혜를 날마다 헤아려야 한다. 

물고기 153마리 함께 세기. 

모세 (하나님이 베풀어 주신 은혜 공개적으로 헤아리기), 여호수아(정복한 왕들 세어보기), 찬송가 429장.


9. 사명자의 모든 질문은 주님 안에서 해소된다. 

제자들이 주님을 직접 뵙는 순간 그들의 마음속에서 제기되었던 숱한 질문들이 모두 사라져 버림. 

사람은 눈으로 보는 것이 마음에 담기고, 또 마음에 담긴 것의 지배를 받는다. 

"우리의 시선이 예수 그리스도를 향해 있을 때에만 우리는 그리스도인" C.S. Lewis

말씀을 통해, 기도를 통해, 우리의 시선을 주님께 고정시키기 위해 말씀 묵상과 기도생활이 필요. 


10. 사명자는 물질 이전에 마음을 주어야 한다. 

진주성찬보다 억지로가 아닌 진정으로 상대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느냐의 차이.

더러운 걸인의 손을 잡아준 베드로 (사도행전 3:6-7)


11. 사명자의 믿음의 토대는 부활신앙이어야 한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우리 믿음의 토대가 될 때에만 어떤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사명자로 살아갈 수 있다. 


12. 사명자는 자신이 지금 무엇을 사랑하고 있는지를 분명히 해야 한다.

요21:15 상반절 요한의 아들 시몬 (베드로의 옛 이름)으로 부르신 것은 

지난 시절 어부였던 시몬으로 되돌아가 밤새도록 헛그물질만 반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베드로가 지금 주님 안에서 새사람의 삶을 살고 있는지, 

아니면 옛사람의 삶으로 회귀해 버렸는지 스스로 확인케 해주시기 위함이었다. 

* 주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언제나 우리의 최선이지, 모든 사람 가운데 최고가 아니라는 말이다. 

*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너를 사로잡고 있는 네 욕망보다 (네가 빵과 생선, 다시 말해 육체의 양식을 목적으로 삼는 네 배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 그래서 우리는 언제나 내가 지금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자문하고, 정직하게 자답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옛 삶에서 탈피하여 주님만을 사랑하는 사명자의 삶을 일구어 갈 수 있다. 


13. 사명자는 모든 방향으로 사랑의 통로가 되어야 한다. 

* 에로스, 스트로게(가족 간), 필리아 (친구, 우정, 형제애) - 모두 조건적, 기브 앤 테이크 식의 사랑

* 아가파오 - 무조건적 사랑

* 주님께서는 필리아의 사랑까지만 알고 있는 베드로의 수준에 당신을 맞추어 고백을 받아 주심

사랑은 상대에게 요구할 수 있는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남편이 잘할 수 있는 것을 요구하고 격려해야 남편은 떳떳하고도 바른 가장이 될 수 있다. 

요구할 수 없는 것을 요구하면 결국 상처 받는 사람은 자기 자신이다. 

그러나 요구할 수 있는 것을 요구하는 사람은 항상 감사하다. 

* 사랑의 위대함. 상대의 수준으로 내려가 상대에게 요구할 수 있는 것을 요구한다는 것은 상대를 품는다는 말. 

그것은 상대의 주순에서 상대와 내가 함께 그대로 머문다는 말이 아니다. 

상대를 품으면 상대를 품은 나의 품 안에서 상대가 나에게 동화된다. 


욕망의 논리가 판을 치는 이 욕망의 세상에서 주님을 사랑하는 길은 '주님의 양', 즉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다. 

그 이외에 주님을 사랑하는 길은 없다. 

우리 각자가 무슨 직업을 갖고 있든, 그 궁극적 목적이 사람이 사랑하기 위함일 때 

우리는 주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명자 일 수 있다. 


* 아르니온 (어린 양) - 자기보다 못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 자신보다 못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그의 처지에서는 것이다.

* 프로바톤 (장성한 양) - 자기보다 더 크고 나은 사람. 자기보다 더 크고 나은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그의 수고를 인정해 주고, 또 그를 긍휼히 여기는 것이다.

* 프로바티온 (새끼 양과 장성한 양의 중간) - 자기와 같은 수준의 사람을 사랑하는 것. 경쟁 상대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서로 보완해 주며 더욱 사랑하는 것. 


하나님의 아들로 외양간의 가장 비천한 사람보다 더 낮은 사람으로 오신 주님. 

가장 낮은 사람에서부터 가장 높은 사람에 이르기까지, 이 세상 모든 사람을 사랑하는 사랑의 주님. 

그 주님의 제자라면,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주님의 양들을 위해 

모든 방향으로 그 사랑의 통로로 살아야 함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 아니겠는가? 


14. 사명자는 주님을 향해 두 팔을 벌리고 살아야 한다. 

두 팔을 벌리는 것은 항복하는 것. 더 이상 저항하지 않겠다는 표시. 온전히 주님에 의해 다루어지는 것. 


15. 사명자는 소문과 진실을 구별할 수 있어야 한다. 

물고기 잡으러 가버린 제자들. 영원한 진리를 말하기는 하면서도 

자신을 스스로 갉아먹는 자기 욕망에 마음과 시간을 송두리째 빼앗겨 버리는 것? 

욕망의 자리에서 자멸의 길을 걷던 인간을 영원한 은혜의 자리로 데려가시는 것이 주님의 은혜라면, 

그 다음부터 주님의 그 은혜를 의지하여 주님을 따르는 것은 인간의 의지다.

당신의 택하신 자녀를 은혜의 자리로 데려가시는 것이 주님의 책임이라면, 

그 은혜의 주님을 의지를 다해 좇는 것은 전적으로 인간의 책임이다. 

'너는 나를 따르라' (두 번 반복) 

베드로의 권면 (벧후 1:2-11) 힘써 주님을 따르는 사람만 거짓 소문의 통로가 아니라, 

오히려 거짓되고 헛된 소문으로부터 형제자매를 보호하고 감싸 주는 사명자로 살 수 있다. 


16. 사명자는 하나님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다. 

때와 시기는 오직 하나님 아버지의 권한에 속하므로 우리가 알 바가 아님. 

- 성부 하나님의 영역에 속한 일이었기에, 성부 하나님의 영역을 절대적으로 존중하신 것. 

믿음은 피조물의 머리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창조주 하나님의 그 영역을 존중하는 것.

성부 하나님께 어떤 이의도 제기지 않는 완전한 순종으로, 

죄와 사망의 덫에서 인간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성취하는 그리스도의 사명을 완수하실 수 있었음. 

믿음은 하나님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고, 절대적으로 존중하는 것. 그런 믿음을 지닌 사람만,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해드리는 사명자행전을 일구어 갈 수 있다. 


17. 사명자는 지금 주어진 삶의 자리를 인내로 지킨다. 

내가 지금 구하는 것이 나의 영광인가, 하나님의 영광인가? 내가 이루고자 하는 것이 나의 뜻인가, 하나님의 뜻인가?

요한이 잊고 있었던 주님의 말씀 (요 14:26 에만 있는 성령님에 대한 말씀)을 다시 생각해 낼 수 있었던 것은 성령님의 역사. 

다른 제자들이 잊어버린 주님의 말씀을 기억해 낼 수 있었던 것은 

노파 마리아를 봉양하는 삶의 자리를 지킨 요한을 위한 성령님의 역사. 

요한만 기록한 말씀들: 

성령님 (요 14) / 나는 세상의 빛이다 (요 8) -  영원한 생명의 빛이 되신 주님의 말씀을 기억 / 

세족식 이야기 (요 13) - 노파 마리아의 발을 씻어 드리는 요한의 일상사가,  

자신의 발을 손수 씻겨 주시던 주님의 따뜻한 손길을 잊지 않게 해줌 /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요 13) - 어떤 상황에 처해 있든 '서로 사랑하라'

작은 사람도 큰 사람을 사랑하고, 가난한 사람도 부자를 사랑하며, 병든 사람도 건강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 


사명자는 자기에게 현재 주어진 삶의 자리가 곧 사명의 자리임을 깨닫고 인내로 지키는 사람.

지금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자리가 바로 땅끝의 시발점임을 알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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꽉찬 일주일
live love

저번주 목요일에 말라위에서 돌아왔으니 뉴욕에 온 지 일주일이 되었다. 하루하루가 꽉차서 마치 뉴욕 돌아온지 한 달은 된 것같은 일주일. 좀바에서처럼 새소리가 들리는 전원의 아침은 아니지만 분주하게 움직이는 생동감이 느껴지는 뉴욕의 아침도 나쁘지 않다. 


지난 2년과는 확실이 다른 것을 느낀다. 똑같이 수업을 듣고 있는데도 다름을 느낀다. 1,2년차에는 별로 많이 듣지 않았던 "그래서 박사 논문은 뭐를 쓰려고하니"라는 질문과 여름이 끝났으니 "아프리카는 어땠어"라는 질문이 지난 7일동안 제일 많이 들은 말이었다. 


2년이 지나면 좀 나아질 줄 알았는데 아직도 하고 싶고, 궁금한게 많다. 나라는 사람은 석사를 했어도 이것저것 다 관심가졌을거야. 여름 동안 대학원 그만둘까요, 휴학할까요 등등 기도를 많이 했는데, 서울-파리-캄보디아-뉴욕-말라위를 돌아다니면서 많이 깨닫게 해주셨다. 


내가 답답했던 것 중 하나는 가시적인 결과물이 없기 때문인가봐. 하나님과의 관계든, 사람이든, 연구든, 공부든, 직장이든 20대는 씨뿌리는 시기. 노력하는 대로 결과가 보이지는 않지만 30대, 40대가 되면서 조금씩 보일 것 같아 (나의 30대 예찬론ㅎㅎㅎㅎ 엄마는 40대가 황금기였다고 하신다). 


연구하기에는 지혜가 턱없이 부족하지만, 읽고 쓰는 일이 다른 어떤 일보다도 좋고, 또 이곳에서 내가 낮아지려고 할 수록 자꾸 세우시기 때문에 나를 통해 하려고 하시는 일들이 있는 듯 보인다. 


그래 공부하자, 연구하자ㅋㅋㅋㅋ 무엇으로 밀고 나가야 되는건지 고민중이다. 말라위 연구를 읽어주기로 했던 개발경제학 교수님은 옮기셨고, 그 대신 다른 여자 교수님이 하버드에서 오셨다. 학부때부터 친했던 환경경제학 교수님은 캘리포니아로 가셨는데, 4학년 때 그 교수님보다 더 어드바이저로 삼고 싶으셨던 교수님이 한국의 에너지 시스템에 대한 내 연구 주제 생각을 교수님이 더 좋아하셨다. 이 셋보다 제일 "경제학자"스러우신 법과경제학 교수님은 연구조교 지원한 역사 이래 유일하게 경제학 성적을 물어보셨다. 그런데 오히려 떠나버린 개발경제학 교수님보다 말라위 연구에 대해 더 도움이 되는 말씀들을 많이 해주셨다. 여름동안 아프리카 개발과 거버넌스에 대한 고민도 많이 했었고, 환경법에도 관심이 많으니 교수님 조교하는 것도 신기한 경험일듯! 


어드바이저는 천천히, 데이팅 하듯이 고르라는 선배들의 조언에 따라 이들을 모두 놓고, 기도하며 잘 생각해봐야지. 앞으로 2년동안 열심히 연구해서 쓸 논문인데 그냥 아무렇게나 정할 것도 아니고. 필드에 나가는 개발경제학 모드와 한국 에너지 경제학 모드 중에 무엇에 더 집중할 것인가. 


여기까지 읽으면 마치 내가 연구연구연구 모드인 것 처럼 보이지만ㅎㅎㅎㅎ 파리를 추억하며 첼시에 le grainne cafe에서 프랑스식 브런치로 시작하여 웨스트빌리지-그린위치빌리지를 한바퀴 다 돌았다. 도마가 없어지고 surf nyc가게가 생기는 듯. 브룩클린에 있던 apc surplus가 옮겨온 웨스트빌리지는 내가 더욱 사랑해줄 수 밖에 없는 곳으로 변해가고 있다. 그동안 많이 아껴주었던 stumptown보다 더 대화하기 좋은 birch coffee에서 호주커피 플랫화이트도 마시며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고, 타임스퀘어 동네쪽에 있는 것 치고 괜찮았던 타이 식당 room service 에서 식사. 요즘은 레스토랑 이름까지도 이렇게 특이하게 해야되나보다?!?!


무엇보다도 서울-파리-캄보디아-말라위에서 처럼 말씀으로 하루를 시작할 수 있어서 너무 좋다. 생명력 있는 말씀. 바쁜 와중에도 그 아침시간을 갈급해하는 사람들과 함께 나눌 수 있어서 좋고, 언제든지 집으로 초대해서 예배를 사모하는 친구가 있어서 감사하다. 말라위에서 짐이 오지 않아도, 일이 바로바로 풀리지 않아도 주님 보시기에 기쁘신 일이고 합당한 일이면 알아서 해주실 것을 믿기 때문에 난 사랑만 하며 사는 축복을 누리면 된다. 무한 기쁨의 원천되시는 그분과 함께 <3 <3


A new commandment I give to you, that you love one another: just as I have loved you, also are to love one another. By this all people will know that you are my disciples. John 13:34-35




2012.09.14 02:29 URL EDIT REPLY
비밀댓글입니다
2012.09.14 02:42 URL EDIT REPLY
비밀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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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행
너에게 보내는 마음

- 용혜원

인생 길에 동행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행복한 일입니다

힘들 때 서로 기댈 수 있고
아플 때 곁에 있어 줄 수 있고
어려울 때 힘이 되어 줄 수 있으니
서로 위로가 될 것입니다

여행을 떠나도
홀로면 고독할 터인데
서로의 눈 맞추어 웃으며
동행하는 이 있으니
참으로 기쁜 일입니다

사랑은 홀로는 할 수가 없고
맛있는 음식도 홀로는 맛없고
멋진 영화도 홀로는 재미없고
아름다운 옷도 보아줄 사람이 없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아무리 재미있는 이야기도
들어줄 사람이 없다면
독백이 되고 맙니다

인생 길에 동행하는 사람이 있다면
더 깊이 사랑해야 합니다
그 사랑으로 인하여
오늘도 내일도 행복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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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is where the heart is
live love



뉴욕과 말라위에서 많이 들었던 질문 중에 하나는 이상형이 뭐야? 배우자기도를 해야된다는 조언은 스무살때부터 들었는데 그 때와 같은 것도 있고, 달라진 것도 있고. 스무살때와 지금, 이상형의 변화가 확실히 있는 것 같다. 

스무살에는 예수님을 구원자로 믿고, 생물/환경에 관심있고, 내게 자상하고, 키크고 농구를 좋아하고, 엄마한테 잘하고, 봉사에 관심있고, 내가 배울점이 있는 사람이 이상형이었다. 잘 보면 내가 고등학교 때 관심있었던 것이 다 포함되어 있었던 것 같다. 나와 비슷해야지만 동역자와 친밀함을 느낄거라고 생각했던걸까? 아니면 공유하는게 많으니까 좋아지는 걸까? 

그 때는 어렸다. 지금도 부족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깨달은 것은 삶의 방향성, 추구하는 가치가 같아야 겠다는 것. 지인들도, 엄마아빠도 내 비전을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이어야겠다고 말씀하셨다. 그보다 더 중요한 건 내가 그런 사람을 만날 수 있을만큼 나도 계속 발전하는 사람이어야 겠다는 생각. 사실 중심이 바로 서있으면 나머지는 다 따라오지 않을까?라고 생각해서 구체적으로 별로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막연히 '좋다'라고 느껴지는 사람을 찾아.

자세히 따져보다면, 꼭 이런 사람이었으면. 예수님을 구원자로 믿고, 자신의 일을 열정을 갖고 최선을 다하고 그 누구보다 내게 따뜻하고 자상한 사람. 
 
이렇게 말하니까 뉴저지짱아 준과 알버트가 그럴리가 없다면서, 더 보는 게 있는 것 같다고 얘기했다. 
그런가? 그래서 하나하나 더 생각해봤지ㅎㅎ

약하고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안타까움을 실천하는 사람. 부모님들이 보여주시는 사랑을 몸소 실천하는, 또 자녀들에게도 그 사랑을 표현하는 사람. 쉽게 화내지 않는 사람. 손잡고 산책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 끝까지 그 손 놓지 않는 사람. 사랑한다고 표현하고, 고백하는 사람. 시간이 흘러서 지금과 모습이 달라도 세상에서 제일 예쁘다고 말해주는 사람. 나의 nerdy함, illogical reasoning, 요상한 말투와 s발음까지도 사랑스럽다고 여기는 사람. 

온전하지 못한 가정이 점점 늘어가고, 한 번의 결혼이란 가능하지 않다고 여겨지는 요즘, 동반자를 만나게 하시는 건 정말 하나님 나라의 확장에 참여를 허락하시는 축복, 은혜임을 2년 사이에 깨달은 것 같다.

 


발전하면서 동시에 초심을 잃지 않는 것은 쉽지 않다. 한결같은 사람, 한결같은 사랑. 참 많은 것에 대하여 사람은 쉽게 두 마음을 갖는다. 흔들리지 않고 마음을 지키는 것, 그것 마저도 100% 내힘으로, 사람의 힘으로 되지 않음을 깨달았던 때가 있다. 그렇기에 빌립보서 4:6-7이 너무 와닿는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steven curtis chapman _ i'll be he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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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에 힘겨워 할 그대에게
너에게 보내는 마음



연달아 이별 소식을 듣는다. 감기 전의 두통처럼 진작부터 조짐이 보이던 것도 있고, 센 바람에 쾅하고 닫힌 창문처럼 갑작스러운 것도 있다. 어떤 경우건 이별은 힘들다. 얼빠지고 넋이 나가는 데다가 누구 얘기처럼 '마음이 아프다가 마음이 슬프다가 마음이 없어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괜찮은 것같기도 하고 죽을 것 같기도 한 날들이 반복되면서 마음은 넝마가 된다. 나는 애인과 헤어진 친구를 만나서, 함께 그 남자를 욕하거나 끝내길 백 번 잘했다고 부추기지 않는다. 인사불성이 도리 만큼 함께 술을 마시고 끌어안은 채 울지도 않는다. '사랑이 다른 사랑으로 잊혀진다'며 다른 남자를 소개하지도 않는다. '보고 싶어서 잠이 안 온다'는 문자를 받으면 '집에 와'라고 답을 보낸다. 친구는 새벽 4시에 덜 마른 머리인 채로 맨발에 프로스펙스 슬리퍼를 신고 온다. 그 얼굴은 절박하지만 나는 그냥 하던 일을 한다. 고양이도 잠이 든다는 새벽 4시에 친구는 이마에 손을 올리고 내 침대에 누워있고 나는 자판을 두드린다. 딱히 쓸 게 있어서는 아니다. 담배냄새를 싫어하지만 베개 옆에 다 먹은 민트통을 놔주고 우는 것 같으면 헤드폰의 볼륨을 높이는 정도다. 헤어지고 나면 세상에 내 편은 없다고 느낀다. 갑자기 슬프고 갑자기 눈물이 나고 갑자기 우습다. 혼자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무서워진다. 그걸 다 아니까 온다면 오라고 하고, 부르면 간다. 너무 신경을 쓰면 자주 못 오고 만나잔 얘기도 망설인다. 미안하게 만들고 싶지 않고 눈치 보게 하고 싶지도 않으니까 '널 위해 모든 걸 제치고 여기 왔잖아' 같은 태도는 안 보인다. 다른 친구들과 술을 먹고 널부러져 있는 테이블에 나중에 가서 쌈장에 빠져 있는 휴대폰을 꺼내 닦아주고, 취해서 헛소리를 하는 옆에서 마감뉴스를 보고 치킨을 먹다가, 깨고 나면 대리기사를 불러 집에 보낸다. 이 정도면 별로 큰 폐는 아니라고 느껴질 만큼만 돌본다. 지난 달, 세명의 친구가 애인과 헤어졌다. 밤에 운전을 하는 일이 많아졌고 휴대폰은 늘 완전히 충전시켜 둔다. 문자가 오면 바로 답을 보내고 전화가 오면 벨 소리가 세번을 넘기기 전에 받는다. 문 닫기 직전의 카페에 앉아있는 일도 늘었다. 말을 하기보다는 주로 듣는 쪽이지만 얘기를 하는 동안 몸 어딘가가 친구에게 닿게 앉는다. 헤어지고 나면 만지고 만져졌던 기억도 그립고 원하게 되고, 온몸이 휑뎅그렝하게 느껴질 때 손가락이나 무릎이 닿는 촉감은 애인의 것이 아니어도 위로가 된다. 대부분 이별하고 난 후엔 화가 너무 나서 온갖 욕을 해댄다. 얘기를 듣다보면 세상에 그런 이상한 사람이 없어서, 어느새 그는 오징어 촉수와 성냥갑과 곰눈과 음식물 쓰레기를 합친 것보다도 더 형편없는 사람이 되어 있다. 그럴 땐 맞장구를 치지 않는다. 저주의 말을 모은 문자를 보내려고 할 때도, 전화해서 '잘 먹고 잘 살아라'고 퍼붓겠다고 할 때도 말린다. 왜냐하면 분명히 후회할 테니까. 이별 후에 한 마음에 없는 못된 말들은 결국 스스로에게 돌아와 꽂힌다. 그리고 그건 그의 냄새나 말투, 걸음걸이보다 더 오래 남는다.

 

 모두 이별을 하고, 헤어지고 나면 누구나 힘들다. 기우뚱하게 눌린 베개를 봐도 눈물이 나고 껌종이 뒤에 그가 써놓은 중국집 배달 전화번호 하나도 버리지 못한다. 갤러리아 백화점 앞에서 호떡을 든 채 울기도 하고, 걷다 보면 어느 순간 다리가 없어진 것 같은 기분도 든다. 나는 세상에서 내가 제일 가엾어, 같은 문자도 누군가에게 보내고 그게 슬퍼서 또 운다. 다 안다. 다 겪었으니까. 그러나, 헤어진 후의 친구들에게 정작 말하고 싶었던 건 그게 아니다. 헤어진 건, 헤어질 수 있어서다. 헤어질 수 있을 만큼만 사랑한 거고, 그러니까 괜찮다.


꽃처럼 웃었던가  -강지영, GQ-


김정은은 내가 좋아하는 여배우 중 하나는 아니다. 하지만 약 2년을 사귄 남자로부터 전화로 이별통보를 받고도 이곳저곳에서 밝은 표정으로 연기하고, 음악쇼를 진행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정말 이유가 어머님의 반대였다면 사랑하는 사람이 어머니 마음에 들도록 끝까지 설득하지 못한 그도 찬 한심하다. 그렇게 반대했던 사이라면 그렇게 공개적으로 이리저리 얼굴 내놓지 말고 김지수-김수혁처럼 조용히 사귀던지. 내가 당신을 지켜줄거에요.따위의 약속을 이서진도 김정은에게 했겠지. 지키지못할 약속은 하지 말자.


Favicon of http://hesitationmark.tistory.com march hare 2008.11.23 19:54 신고 URL EDIT REPLY
'손가락이나 무릎이 닿는 촉감'
Favicon of https://annetteettoi.tistory.com serene | 2008.11.24 22:44 신고 URL EDIT
just being the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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