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가지 생각이 둥둥 떠다녀서 차분히 정리를 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그날 그날 이 구절이 얼마나 와닿느냐에 따라서 내가, 우리가 누리는 은혜는 차원이 다른 것 같다.
스스로 세운 선과 악의 기준에 따라서 세상을 바라볼 때 느끼는 갑갑함과
(왜냐면 세상은 그렇게 돌아가지 않기 때문에, 나는 완전하지 않아서 시시때때로 그 기준도 바뀜으로)
그렇게 세운 기준대로 살지 못하는 스스로를 발견할 때 느끼는 자괴감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성취하고 싶은 어떤 기준에 도달하지 못할때 느끼는 허무함으로 인한 악순환에서 자유롭고 싶다는 건
내가 생각하는 기준에 비할 수 없는 어떤 선하고 완전한 기준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게 아닐까
그래서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시는 예수님이
뭐라고 하시는 건지 잘 이해하지 못했더라도 땡볕에 물 기르러 나온 사마리아 여인에게는
너무나 웰커밍하고 따스하면서도 상콤하게 느껴지지 않았을까?
불안감을 겪는 분과 자살시도를 한 학부생을 만나고 난 뒤 집에 와서
오늘이 내게 주어진 마지막 날이라면
내가 사랑하는 가족, 친구들, 선후배들, 교수님들, 그 누군가에게 전하고 싶은 건, 당부하고 싶은 건
예수님 한 분 밖에 없다는 것, 꼭 주인으로 모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바램을 다시 한 번 고백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하고 나면 신기하리만큼 모든 것이 단순해진다.
지금 내게 주어진 선택의 기로에서 성령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일까?
내 영을 궁핍하게 할 것 같고, 악한 생각을 갖게 할 것 같은 건 더 이상 별로 하고 싶어지지 않는 것이다.
억지로 거하게 취하는 술자리에 안 가고 싶고, 비싼 것으로 날 치장하지 않으려고 하고, 잔인한 영화를 의도적으로 안 보는 차원을 넘어서
그런 선택들이 내게 기쁨으로 다가오지 않기 때문에 선택 사항 중에 고려되지 않는 것.
술에 취해야지만 친한 분들이라면, 다른 것에 의지해야지만 그렇게 얘기할 수 있는 사이라는게 더 속상하고
나는 최소한으로 살고, 내게 주어진 것으로 다른 이들이 더욱 누리면서 살 수 있다면 감사하고
강자가 약자를 괴롭히고, 성적으로 취하는 내용은 우리의 마음 상태에도 영향을 미치기에 미래를 더욱 소망하게 하는 내용을 보고 싶은 것.
여러분이 어디에 있든지, 어느 쪽으로 방향을 전환하든지,
하나님에게로 향하지 않으면 불행할 수밖에 없습니다.
세상일이 자신이 바라는 대로 되지 않는다고 왜 불평합니까?
자신이 원하는 것을 모두 가진 사람이 있습니까?
나도 아니고 여러분도 아니며, 지구상에 그러한 사람은 없습니다.
이 세상에는 누구도, 제왕이나 교황마저도, 근심 걱정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없습니다.
바보스러운 병약자들은 말합니다. "보십시오. 저들은 얼마나 행복해하며, 얼마나 부자이며,
얼마나 위대하며, 얼마나 큰 권력을 갖고 있으며, 얼마나 의기양양합니까?"
그러나 하나님 나라의 선한 일에 주의를 기울인다면,
일시적으로 지나가는 일들은 모두 아무것도 아님을 깨달을 것입니다.
세상일들은 불확실하고 짐스러운 것임을 깨달을 것입니다...
사람의 행복은 일시적으로 지나가는 것을 충족하게 가지는 데서 오지 않습니다.
절제가 우리의 필요를 충족해 주는 것으로 족합니다.
이 세상에 산다는 것은 참으로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영적인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면 원할수록 인간의 결점인 부패를 더 잘 이해하게 되고,
더 분명히 볼 수 있기 때문에 현세의 삶은 우리에게는 더 고통스럽기만 합니다.
내면이 깊은 사람은 이 세상에서 받는 육체의 욕구를 많이 부담스러워합니다.
그러나 자신의 불행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화가 있을 것이며,
비참하고 썩어 죽어 가는 삶을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더 큰 화가 있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러한 삶에 너무나 강하게 얽매인 나머지 노동이나 걸식을 통해
일상적인 필요를 충족하지 못하면서도
세상적인 생활을 버리지 못하고 하나님 나라에 아무런 관심이 없습니다.
모든 희망과 열망을 영원한 선을 구하는데.
이렇게 우리 인간은 매우 연약하고 변하기 쉬운 존재이기 때문에 겸손해야 하며,
결코 자신을 높이 평가해서는 안 됩니다.
<그리스도를 본받아>
이렇게 점점 명확해지는 것도 있지만, 아직 뚜렷하게 보이지 않는 것도 많다.
지금의 자리를 마무리하고 나아가야 하는 길은 어디일까.
치열하게 바로 교수 시장으로 뛰어들어가야 하는 것일까?
연구직을 하면서 천천히 해도 되는 걸까?
프리랜서로 연구하면서 충분히 더 생각하고 경험쌓으면서 하는것은?
부모님은 될 수 있는 한 빨리 한국에 오길 바라시는데, 나도 그런 마음이 들다가도 아직 더 있어보고 싶은 건 이곳에서 만나야 할 분들이 있어서인가 아니면 한국 사회에 갑갑함을 느껴서인가? 그런데 내가 지금 만나야 할 영혼이 한국에 있다면?
교수라는 자리가 주는 안정성, 하지만 그만큼 바쁜 생활 (연구, 어드바이징, 수업 티칭) 가운데 충분히 제자삼으며 살 수 있을까?
아직은 힘들겠다고 생각하는 건 내가 스스로 모세처럼 못하겠다고 하는 것일까?
억지로 시키시는 분은 아니니 거리낌이 있을 때는 괜찮은걸까?
"그렇기 때문에 저는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항상 거리낄 것 없는 양심을 간직하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행 24:16
기도하다 보면 지금 내가 나아가서, 하나님과 이웃 사랑할 어디인지 더욱 확신을 주시리라 믿는다. 마치 연구하고 깨달은 것을 나눴을 때 내가 제일 기뻐한다는 것을 알고나서 생애 첫 대학 인터뷰가 잡힌 것처럼.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for it is God who works in you, both to will and to work for his good pleasure
빌립보서 2:13
나그네로써의 삶을 배워나가는 2014년 가을, 겨울이다.
막상 뉴욕을 떠나게 될 것 같으니 만나는 모든 사람들과의 시간, 걷고 있는 이 곳이 새롭게 다가온다.
8년을 있었는데도 충분히 사랑을 전해주지 못한 많은 사람들에게 미안하고, 주님께 죄송하고,
나는 이렇게 많이 사랑을 받았는데 베풀지 못한 것 같아
지금부터라도 최대한 많이 사랑하고 싶다고 기도한다.
그렇다면 주어진 일들을 주께 하듯이 최선을 다하면서도
받은 사랑을 받을 기회, 영혼을 터치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면 분별하며
시간을 더욱 쪼개 규모있게 써야하는 것이다.
가르치는 자리에 놓이게 되면 여러 부분들을 제대로 해야겠다는 묵상을 하게 되었다.
1) 어디에 있던지 중보의 끈을 놓지 않는다
2) 공식적인 자리에서 술을 마시지 않는다
3) 한국인 학생은 물론 외국인 학생들을 1:1로 인격적으로 대하고, 기도로 세워준다
4) 보내주시는 분들과 1달에 한번? 격주로 한번? 중보기도의 자리를 갖자
5) 건강한 교회 공동체에 속해서 그 곳에서 받은 훈련을 통한 은혜를 학교에서도 발휘한다
6) 체력이 뒷받침 되어야 맡겨진 일을 성실하게 마무리 할 수 있으니 꾸준한 운동은 필수
7) 개발학에서 팽배한 인본주의적 사상을 경계하자
삶은 관계로 이뤄져있음을 요즘 들어서야 깨달았다.
공부를 하다보면 성적만 잘 받고, 인턴경력 쌓아서 직장을 구하면 땡인 것 처럼 생각하게 되지만
우리가 일원으로 일하는 사회가 여러 관계들이 얽혀서 생성된 것이며
동료, 선배, 후배들의 처지를 이해하며 맡겨진 것에 최선을 다하되 선을 넘지 않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
어떤 직분이 주어지더라도 내가 속한 곳이 어디인지 잊지 않도록 말씀 안에 거하는 사람이길.
9: 1 내가 이 모든 것을 생각하고 나서 결론을 내리기는 의인들과 지혜로운 사람들과 그들이 하는 일은 모두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고 그 누구도 자기 앞에 놓인 것이 사랑인지 미움인지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7너는 가서 기쁨으로 네 음식을 먹고 즐거운 마음으로 네 포도주를 마셔라. 하나님이 네 일을 기쁘게 받으셨으니 말이다.
9허무한 생애 동안, 하나님께서 해 아래에서 네게 주신 허무한 일생 동안 네 사랑하는 아내와 즐겁게 살아라. 이것이 이생에서 네 몫이요 네가 해 아래에서 열심히 일한 것에 대한 몫이다.
10무엇이든지 네 손으로 할 만한 일을 찾으면 온 힘을 다해 하여라. 네가 가게 될 무덤 속에는 일도, 계획도, 지식도, 지혜도 없기 때문이다.
전도서 9:1-10
* 사람의 마음은 내가 알 수 없지만 언젠가는 같은 운명을 직면한다.
* 주님을 만났을 때 나는 생명책에 써있는 사람일 것인가
* 힘든 상황이더라도 한없이 풀 죽어 있기보다는 기쁨을 누리기 원하신다
* 사실 감사할 것은 넘친다. 따뜻한 물이 나오고, 언제든지 친구들과 가족에게 전화할 수 있고, 하루만에 집으로 날라갈 수 있고, 모르는것 천지여도 응원해주시는 교수님들이 있고.
* 주님 안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사는 그날, 그리고 결과와 상관 없이 내가 보람을 느끼는 일을 하면서 영혼의 안식 덕분에 누리는 은혜를 흘려 보내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행복임을.
2. 존귀함
우리 가족은 꾸준하게 함께 뭔가를 한 적이 없다. 단기/ 중장기 적으로 한 것은 도서관에 가서 식구별로 흩어져 책을 골라 함께 대여하거나, 여행을 가거나, 어느 특정 지역에 살 때 절에 간다거나 교회에 간 적은 있다. 필 받을 때 산을 오르거나 맛집을 찾아 시외로 드라이브 가는 것.
그런 내가 친구의 손에 이끌려 중학교 때 교회에 가서 마음 맞는 친구들을 만나고, 고등학교 때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것은 기적 그 자체. 매주 가면서도 중학교 때는 믿지 않았는데 기숙고등학교를 간 건, 편안함과 안정감을 주는 집에서 떨어져야 가능해서 그랬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사랑하는 친구들, 선배, 후배들과 따뜻한 온돌 바닥에서 뒹굴며 맛난 주전부리를 먹으면서, '나만, 우리만 이렇게 행복해도 되는걸까' 하고 문득 생각했던 것 같다. 직접 전쟁을 본 적은 없지만 수 많은 전쟁의 역사로 가득한 국사와 유럽사 공부를 하면서, 꽃동네 할머니 할아버지 기저귀를 갈아드리면서, 춘천과 필리핀에서 해비타트를 하며 만난 사람들과 풍경이 '부족하지만 도움이 될 수 있는 곳에서 내가 받은 사랑과 은혜를 나누고 싶다'는 기도로 이어졌는지도.
고등학교 때부터 그렇게 가보고 싶었던 아프리카 국가들을 드디어 대학원에 들어와서 가볼 수 있었다. 세계 국가들을 경제적으로 나열하면 하위 10개국가와 순위 다툼한다는 말라위와 나름 아프리카의 정치 수도인 아디스아바바가 위치한 에티오피아. 24살 된 딸이 아프리카에 가겠다고 하니 걱정을 많이 하셨지만 한국인 과 선배들과 함께 말라위에서는 한국 부자가 세워준 병원 숙소에서, 아디스아바바에서는 코이카 협력의사의 숙소에서 지낸다고 하니 아프면 금방 치료 받겠거니 하고 허락해주셨다.
여러번 방문하며 어린 꼬마부터 할아버지/할머니까지 만나면서 '나에겐, 우리에겐 이렇게 좋으신 하나님인데 그들에게도 그럴까'하는 의문이 모두 풀렸다. 무기력함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한국이나 미국에도 똑같이 그런 사람들은 있으니까. 독립 이후 한국보다 에티오피아는 잘 살았었는데 지금은 비교가 안 되는 사정인게 놀라울 따름이라는 반응을 받았지만, 두 나라 모두에서 중국인보다 한국인에게, 서양인들보다 한국인들에게 훨씬 우호적인 것이 참 신기하게 여겨졌다. 한 명, 한 명 만났을 때 모두 사랑받아야 할 존재이고, 귀하게 느껴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와줘야 할 집단"이라는 인식은 쉽사리 바뀌지 않았다. 교통, 의료, 교육, 농업.. 바뀌어야 할 요소들이 너무 많아서. 에티오피아보다 말라위는 더욱.
개발학에서는 원조를 최소화(혹은 주지 않고) 각 나라가 bottom-up으로 바뀌도록 도와야 한다는 입장과, 세밀화된 원조로 변화를 줘야한다는 입장으로 나뉘어진다. 지난 4년간 공부하면서 느낀 건, "이게 정답일거야" 하는 마음으로 시작하지 않고, 각 나라의 상황과 이해관계를 파악한뒤 상황에 맞는 섬세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게 좋지 않을까?
이 생각은 이번 베트남 방문으로 다시 한번 확인되었다. 내가 읽고, 듣고, 베트남 통계청 자료와 연구한 것과 다른 많은 것들을 깨닫고 왔다. 말라위에서 느꼈던 따뜻함을 베트남 사람들에게서 느꼈다. 전세계에 남은 5개 사회주의 국가 중 하나인데.. 아니나 다를까 이번에 만났던 대부분의 정부 관리자들은 비밀스럽고, 말이 잘 통하지 않았지만 오히려 국영기업이나 국가 산하 사회과학 연구소, 대학 교수들은 솔직하게 대답해준 부분들도 많았다. 가난한 지역에서 선발되어 요리사 과정을 밟고 있는 20대 초반 친구들도. 그들과 소통하면서 사람 한 명 한 명을 넘어 개도국 사람들도 드디어 진심으로 존귀하게 느끼게 되었다. 베트남을 넘어 말라위까지.
결핵과 전염병이 만연했던 조선 땅에 왔던 선교사님들도 그런 마음으로 오셨기에 상상초월하는 모습이었을 하층계급민도 사랑하고 모든 이가 평등하다고 전하지 않았을까.
예수님을 정말 닮고 싶다면, 사랑한다면 약한자를 긍휼하게 느끼는 것을 뛰어넘어 진정 존귀하게 여기는 마음을 매일 주시길 기도하는 사람이여야 겠다는 생각이 든 2014년 여름. 무한 경쟁과 내것부터 챙기자는 사회 분위기는 그런 마음을 너무 쉽게 갉아먹기에.
"... 그러고 나서 왕은 왼쪽에 있는 사람들에게 말할 것이다. '이 저주받은 사람들아! 내게서 떠나 마귀와 그의 부하들을 위해 마련된 영원한 불 속으로 들어가라.
너희는 내가 배고플 때 먹을 것을 주지 않았고 내가 목마를 때 마실 것을 주지 않았다.
내가 나그네 됐을 때 너희는 나를 맞아들이지 않았고 내가 헐벗었을 때 입을 것을 주지 않았다.
내가 병들고 감옥에 갇혔을 때 너희는 나를 보살펴 주지 않았다.'
그들 역시 대답할 것이다. '주여, 주께서 배고프시거나 목마르시거나 나그네 되시거나 헐벗으시거나 병드시거나 감옥에 갇히신 것을 언제 우리가 보고 돌보지 않았다는 말씀입니까?'
왕이 대답할 것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무엇이든 너희가 여기 있는 사람들 중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에게 하지 않은 것이 곧 내게 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영원한 벌에, 의인들은 영원한 생명에 들어갈 것이다. (마태복음 25:41-46)"
마태복음 25장 31절부터 마지막 심판에 대해 처음으로 전하시는 예수님은 나를 믿으면 무조건 전부 천국가~ 라고 하지 않으셨고 세세하게 행동할 포인트를 나열하신다.
배고픈 이, 나그네, 병들고 감옥에 갇힌 이를 돌보라고.
그럼 약속하신 대로 오늘 내게, 매일매일 내게 마음 가게 하시는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에게 마음, 손길, 눈길, 시간 and/or 재물을 내어주는 나이길 구합니다.
그래서 오늘 나에게 의의 옷을 입혀주시는 것처럼 내 이웃(가족, 친구 of all ages, 옆집 사람, 과 친구들, 교수님들, 연구하는 베트남, 인도사람들)에게도 사랑을 전할 수 있도록.
... 너희도 이와 같다. 너희가 지금은 슬퍼하지만 내가 너희를 다시 볼 때는 너희가 기뻐할 것이요, 또 너희 기쁨을 빼앗을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날에는 너희가 내게 어떤 것도 묻지 않을 것이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무엇이든 아버지께 구하면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주실 것이다.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구하지 않았다.
그러나 구하라. 그러면 받을 것이니 너희 기쁨이 충만해질 것이다.
지금까지는 내가 이것을 비유로 말했지만 더 이상 비유로 말하지 않고 내 아버지에 대해 분명하게 말할 때가 올 것이다.
그날에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구할 것이다. 내가 너희를 위해 아버지께 구하겠다는 말이 아니다.
아버지께서는 너희를 친히 사랑하신다. 아버지께서 너희를 친히 사랑하시는 것은 너희가 나를 사랑했고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왔음을 믿었기 때문이다.
요한복음 16: 22-27
2년만에 경험한 한국의 여름은 감사하고 조금 더 단단해진 내 자신을 발견한 시간이었다.
1. 곁
연구가 조금 더디게 되더라도 다급한 아빠의 카톡메시지와 잘 따라주지 않는 몸으로 인해 속상한 엄마의 곁을 지켜야 겠다는 마음으로 탄 한국행 비행기. 함께 기도해준 모든 사람들 덕분에 도착했을때와는 차원이 다른 모습인 부모님을 공항에서 뒤로한채 돌아올 수 있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주님ㅠㅠ
아직도 내게는 부족한 삶과 사회에 대한 열심을 아빠 엄마의 삶에서 다시 한번 볼 수 있었다. 논설 + 리더의 서재에서 + 박사과정 + 매일매일 운동 + 온갖신문 매일 섭렵하시는 아빠. 게다가 이제는 청소, 빨래, 설겆이까지 누가 말하기도 전에 먼저 도와주신다. 엄마의 건강쥬스는 아빠 담당!
겨울 사건 이후 운전도 안하시고, 통학버스가 다니는 서울의 한 동네로 이사온 뒤 주로 걷거나 대중교통을 사용하시는 엄마는 5kg 정도 감량하신 상태였다. 몸 상태는 많이 회복되었으나 아직도 마음 한켠엔 헛헛함을 느끼고 계신 것을 감지할 수 있었다. 엄마 학교에서 다른 교수님들과 함께 점심식사도 하고, 학교 앞 엄마 원룸에서 같이 잠도 자고, 새로 이사온 동네 앞에 있는 시장에서 엄마도 나도 태어나서 처음 보는 나물들로 요리도 하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눌 수 있었다. 양념 만들기부터 동아시아 현대사까지.
큰이모가 소개키셔주신 이수역 맑은손 공동체 시력장애 안마사들의 마사지로 뭉친 근육을 주로 풀어 주시다가 6월 중순부터는 내가 다니던 센트리얼 필라테스도 같이 다니셨는데, 몸이 좋아지시는게 느껴지신다며 좋아하셨다. 유연성 떨어지는 사람들에겐 기구쓰는 필라테스 완전 추천! 응용할 수 있는 포지션도 다양해서 재밌고, 호흡 제대로 하면서 포즈도 제대로 취하면 정말 운동된다. 필라테스 절대 쉽지 않음.
외갓집 식구들과 함께 간 여행, 자매셋의 아이들끼리의 식사, 이모들과의 식사 등에서 나이가 들어가면서 타인을 진정으로 아끼고 사랑하는 것이 얼마나 귀한지를 다시 한 번 느꼈다. 상대가 어이없는 말을 하더라도 진심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고, 그 상대의 처지를 이해하는 큰 이모, 외삼촌과 외숙모. 엄마가 누워있는 모습을 보니 혈압이 오르는 것을 신체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는 작은 이모. 마음 터놓고 얘기할 수 있는 언니들이 있어서 너무 좋다고 하는 작은 이모. 이분들의 어릴적 얘기를 들으면서 이런 가족을 주셔서 감사하고, 더 이해할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하고, 담담뿐만 아니라 사촌오빠들과 또 다른 여동생이라는 큰 가족을 주셔서 너무 감사했다.
이번 여름엔 엄마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교회에 등록하셨다. 뉴욕에서 내가 다니는 교회와 비슷하게 청담동에 청소년수련관을 빌려서 매주 예배를 드리는 새길교회. 강압적으로 믿도록 하는 것이 아닌 예수님의 사랑과 가르침이 스며들도록 곁을 내주고, 함께 해주는 그런 교회였다. 한국 교회에 대한 답답한 소식을 뉴욕에서 많이 접했었는데, 회개와 소통이 이루어지는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니 답답한 한국 사회에서 숨을 쉴 수 있겠다고 처음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인천공항에서 수속 전에 아빠가 먼저 논설을 토요일에 미리 써놓고 매주일엔 엄마와 예배를 드리시겠다고 말씀해주셔서, 처음으로 안도하며 눈물 조금 몰래 흘리고 떠났던 것 같다. 2년전에 진짜 펑펑펑 울어서 엄마 마음을 많이 아프게 해드렸었는데...
친구들은 바쁜 와중에도 나와 여러번 만나주었다ㅠㅠ 20대후반에 접어든 우리, 아직 불확실 한 것도 많고, 성공의 잣대와 아름다음의 기준이 획일화된 한국 사회에서 건강한 마음과 몸을 갖기란 쉽지 않지만,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이 너무 아름다웠다. 친구들 곁에 좋은 사람들이 있기를 기도하며, 언젠가 한동네 살 그날을 꿈꾼다 히힛 이번에 나눈 우리들의 꿈: 여자농구팀 구단주, 올림픽 승마 대한민국 대표선수, LGBT friendly Seoul, 남성잡지 성컬럼니스트 & 기와로 된 북카페 주인.
daydreamer로 살아내는 하루하루!
다음번엔 베트남에서 느낀 존귀함과 꾸준함에 대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