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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과 빵
너에게 보내는 마음/자기앞의 생

이어령


꽃은 먹을 수 없지만

빵을 씹는 것보다는 오래 남는다.

향기로 배부를 수는 없지만

향로의 연기처럼 수직으로 올라가

하늘에 닿는다.


들에 핀 백합은 밤이슬에 시들지만

성모 마리아의 순결한 살을 닮은 

흰빛이 대낮보다 밝다.

붉은 튤립은 화덕 속의 빵보다

뜨겁게 부풀어

속죄의 피보다 더 짙다.


짐승처럼 허기진 날에도

꽃은 아무 데서나 핀다.

들에도 산에도

먹지 못하는 꽃이지만

그 씨가 말씀이 되어 땅에 떨어지면

나는 가장 향기로운 보리처럼

내 허기진 영혼을 채운다.

[발췌] 하지현_ 사랑하기에 결코 늦지 않았다
너에게 보내는 마음/자기앞의 생

p65 

우리가 길러야 하는 것은 이렇게 출렁이는 애매함을 돌파하는 것뿐 아니라, 일시적 퇴행과 불안정한 상태를 견디는 능력이에요... 

애매함으로 인해 생기는 두려움과 불안을 극복하는 길은 새로운 도전과 방향성을 갖추는 일이다. 그러면 불안과 두려움을 관장하는 편도체가 두려움을 포기하게 된다. 무의식에 도사리고 있는 두려움을 주의를 요하는 의식적인 일로 대체하게 만드는 것이다. 애매함을 견디는 능력은 내공이다.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 낙관적으로 생각하며 그냥 안고 갈 수 있는 능력. 사실 판단해야 할 대부분의 일은 시간이 그냥 해결해주는 것이 참 많다. 애매함이 주는 불안과 두려움 때문에 섣부른 판단을 하기 쉽고, 시간이 지나 후회할 일이 생기곤 한다. 그것이 애매함에 대한 공포를 더욱 강화한다. 이를 억누르는 것이 바로 낙관적 자세로 애매함을 견뎌내는 능력이다. 우리에게는 애매함으로 인해 머리가 복잡해지기 전에 '생각을 멈추는 훈련' 이 필요하다. 


67

애매함을 견디는 내공의 중요함뿐 아니라, 성숙에 있어서 의존의 역할과 필수성이었다. 성숙이란 의존적인 사람이 독립적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자기 안에 있는 의존성을 적절하게 다룰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한 사람이 타인을 필요로 하는 것이 얼마나 자연스러운 일인지 이해하는 것이다. 그것이 성숙이다. 애매함과 모호한 관계 때문에 의존을 표현하고 인정할 수 없던 은미는 두진과의 관계를 분명히 하게 되었고, 이는 병적인 의존이나 유아적 의존이 아니라 어른이 갖는 자연스러운 의존성임을 깨달았다. 내가 갖고 있는 의존성을 켜고 끄는 스위치처럼 생각하는 게 아니라, 최적의 거리를 유지하면서 적절히 다룰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의존의 필요성을 인정하는 것이 애매함의 불안 속에서도 한 배 위에 같이 떠 있는 존재가 주는 안정감의 핵심이니까... 그러다가 문득 떠올랐다. 

'내 배에 같이 탈 사람은 누구지?'


89

좋은 관계를 잃은 건 상대방이다. 

선민 씨는 선민 씨를 좋아하지 않게 된 사람을 잃게 되었어요.

그쪽은 자신을 사랑하던 사람을 잃었어요.

정말 영양가 있는 관계를 잃은 것은 그쪽 아닌가요. 


92

어른이 된 다음에도 정서적 결핍이 커지면 먹는 것으로라도 채워 넣으려고 하죠.


94

사랑할 대상이 없어진 것보다,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을 통해 얻었던 자존감의 충족을 더 이상 유지할 수 없게 된 박탈감이 더 크기 때문이다. 빠져나오기 위해서는 마음의 끈을 끊어야 하는데도, 사랑받고 있따고 느끼게 했던 현실의 증거들을 정리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기억을 리셋하기 위해서는 눈에 보이는 것들에서 시작해야 한다. 그녀가 기대하고 있는 '만일에'에 대한 미련과 망설임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 


ask me now thelonius monk


마음의 방


엄마의 배.. 공생의 욕망


현명함이란 무엇을 보고도 못 본 척할 것인지 아는 기술을 갖는 것이다.

비밀로 인해 생긴 결과를 이해하고 분석하는 것이 중요하다.


i say a little prayer for you


자신이 완벽하지 못함을 인정하는 것, 그리고 상대 또한 그렇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 안에서 서로가 상대의 완성을 위해 노력하는 일종의 팀플레이 같은 것이 결혼인 것이다.


그에 반해 서로에게 뭔가를 해줄 것이 있는 관계가 좋죠. 나를 사랑해주는 것에 감사하고 만족할 가능성이 높아요.


충분히 경험하고, 아파보고, 애달파해보고, 겁도 먹어보고 하면서 한 발 한 발 인생의 무거운 짐을 안고 가는 연습



봄길
너에게 보내는 마음/자기앞의 생

정호승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되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봄길이 되어
끝없이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강물은 흐르다가 멈추고
새들은 날아가 돌아오지 않고
하늘과 땅 사이의 모든 꽃잎은 흩어져도
보라
사랑이 끝난 곳에서도
사랑으로 남아 있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사랑이 되어
한 없이 봄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달이 떴다고 전화를 주시다니요
너에게 보내는 마음/자기앞의 생

김용택

달이 떴다고 전화를 주시다니요
이 밤 너무나 신나고 근사해요
내 마음에도 생전 처음 보는 
환한 달이 떠오르고 
산 아래 작은 마을이 그려집니다

간절한 이 그리움들을
사무쳐오는 이 연정을 
달빛에 실어 당신에게 보냅니다

세상에, 강변에 달빛이 곱다고
전화를 주시다니요

흐르는 물 어디쯤
눈부시게 부서지는 소리
아~ 문득 문득 들려옵니다

달이 떴다고 전화를 주시다니요
이 밤 너무나 신나고 근사하네요

오월 찬가
너에게 보내는 마음/자기앞의 생

오순화

연둣빛 물감을 타서 찍었더니
한들한들 숲이 춤춘다.

아침안개 햇살 동무하고
산허리에 내려앉으며 하는 말
오월처럼만 싱그러워라
오월처럼만 사랑스러워라
오월처럼만 숭고해져라

오월 숲은 푸르른 벨벳 치맛자락
엄마 얼굴인 냥 마구마구 부비고싶다.

오월 숲은 움찬 몸짓으로 부르는 사랑의 찬가
너 없으면 안 된다고
너 아니면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니라고
네가 있어 내가 산다.

오월 숲에 물빛 미소가 내린다.
소곤소곤 속삭이듯
날마다 태어나는 신록의 다정한 몸짓
살아있다는 것은 아직도 사랑할
일이 남아 있다는 것

오월처럼만
풋풋한 사랑으로 마주하며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