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전 이맘때쯤부터 작년 말까지 때로는 봄바람처럼 가끔은 동해바다의 파도처럼 마음이 오르락내리락했다.
감사한 것은 나도 모르게 우상 삼았던 것을 하나씩 내려놓게 하셔서
내일 주님을 만난다면, 말씀으로 함께 제 마음을 감찰했던 순간들에 의하면 예수님이 제일 좋다고
하지만 만약 제가 더 좋아하는게 있다면, 진짜 죄송하다고 얘기할 수 있는 마음이 되었다.
학부때는 한국에서 본 적도 없는 차원의 부유한 친구들을 보면서 상대적 박탈감을 느꼈지만
말라위에서 계절마다 최선의 것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제일 좋은 것을 떼어드리는 어머니들
선하신 하나님을 전심으로 찬양하는 어린이들을 보면서
뉴욕에서 서울에서 좋다고 여기는 것들의 부질없음을 깨달았고
분야마다 좋다고, 멋있다고 여겨지는 모습들이 목적이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 위함이 아니면
개인적인 차원에서 얼마나 영을 갉아먹는지, 그리고 사회적으로도 덕이 안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연구는
특별히 지속가능한 발전학에서는 정부도 주목해주지 않는 고아와 과부와 객
(so minority groups, migration, labor employment opportunities)에 대한,
그들이 자연을 다스리며 살지 못하게 하는 것들
(lack of natural resources, high financial & behavioral costs of renewable energy adoption,
difficulty of mitigating air pollution due to its global nature)에 대해 신경쓰게 되었다.
하나님이 인정해주시는 연구, 거짓없는 연구, 데이타 조작 안하는 연구, 있는 그대로 나타내는 연구.
교수는 선생님의 종류 중 하나일뿐 권세를 주장할 자리가 아님을.
예수님이 보냄 받은 하나님보다 크지 않다고 하시는 것처럼,
우리도 세상에 어떤 위치에 있던 상관없이 예수님이 원하시는 것에 100% 순종하며
낮은 마음으로, 더 좁은 문, 좁은 길을.
사랑하는 엄마께서 박사 연구하고 있는 걸 알고 그랬는지
신생아때 울지 않아서 외할머니가 벙어리인 줄 알고 툭툭 쳐보셨다는 나.
맞벌이 하시느라 바쁜 부모님 신경쓰게 해드리지 않고 싶어서 반항 한번 없이 자란 큰딸은
50세가 넘어서야 적극적으로 사랑표현을 하신 아빠때문인지 뭔지 알 수 없는 이유로
적극적으로 애정표현 해주는 사람이 진정으로 사랑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전에 만날때도 속마음은 별로 드러내지 않았던 같고,
대학교때 더 솔직했던 것 같은데 그 때는 둘다 너무 어려서 어떻게 해결해야 할줄 몰랐고,
함께 기도해볼 생각을 못했다.
본이 되는 크리스쳔 커플도 주변에 없었고.
결국 지난 3년간 여러 사람들이 다가와도 쉽게 마음을 내주지 않았던 것 같다.
주변의 도움으로 하나씩 다 만지고 나니 동시 다발적으로 다가오는 분들이 있었는데
그래서 지난 한달간, 특별히 사흘간 또 하나씩 아버지와 마음에 걸리는 것들을 하나씩 풀고.
사랑이 다른 형태일 수도 있다는 걸 깨달았다.
상대방인 나를 배려하는 마음에서 차분히 잔잔히,
그리고 본인의 마음이 앞서지 않도록 조용히 좋아할 수도 있다는 것.
관계 마저도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 위함 인데
서로의 마음을 얻으려고 겉으로 잘해주고 표현하고
항상 함께 있는 것이 사랑이라고 정의하는 것은 아버지 보시기에 기뻐하지 않으실수도.
그렇지만 나같이 둔한 애한테는... 말해주지 않으면 몰라요
아직도 참 모르는게 많은데 하나씩 가르쳐주시며 사랑을 알려주시고,
그 은혜 누리고 나누게 해주심에 감사 또 감사!
Blessed to be a blessing :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