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effable
live love

미안해요, 사랑해요, 고마워요. 

우리가 느끼는 마음을 표현하기엔 역부족이지만, 그래도 전하기엔 충분한 말들. 

이찬수 목사님 말씀처럼, 십자가를 묵상하면서 슬프면서도 기쁘고, 기쁘면서도 슬픈 묘한 고난주간이었는데 너무 은혜받은 성금요일-토요일이었다. 돌아오자마자 저녁에 엄마로부터 전화가 와서 나눌 수 있었다. 

잘 있다가도 왜 문득 힘든 순간들이 있는지 기도해보니 영이 끊겨진 것 같은 마음 때문이었다고, 근데 예수님은 우리는 상상도 못할 거절감을 느끼셨다고. 우리 한 명 한 명을 위해서. 그러면서 짧은 간증을 하니까, 엄마도 정말 네 말대로 공부적인 면에서는 노력한 것 이상으로 계속 잘 되어왔던 것 같다고 하셨다. 날 만나주시기위한 치밀한 인도하심이었어ㅠㅠ 넘넘 섬세하신거 아님ㅠㅠ 중학교때 미국에서 친구 손 잡고 교회에 처음 나가봤고, 소사에서 예수님을 만났고, 대학와서는 없던 전공까지 학부에 생기고. 그걸로 대학원까지 와서 하나님과 더 교제하게 됐고. 

믿지 않는 가정에 있으니까, 진정한 내 편은 가족밖에 없다고 생각했던 나를 만나주시려면 떨어뜨려야 하셨나보다. 고등학교도, 대학도. 또 3살때부터 놀이방에 맡겨지고, 집에 도우미 아주머니가 계시고, 중학교 때는 엄마 학교가 안식년이 1년 이상 되지 않아서 다미를 돌봐야 했고. 부모님 걱정 시키고 싶지 않아서 힘든 일이 있어도 잘 얘기하지 않게 됐고, 사춘기도 없었고, 고등학교도 떨어져서 다니면서 점점 아빠엄마랑 더 친구처럼 되어버린. 좀 더 케어해주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서 계속 어느 관계에 있어서 확인받고 싶어하는 것 같다고, 엄마가 미안해 하셨다. 

표면적인 얘기는 잘 나누어도, 속마음은 잘 얘기하지 않는 사람으로 큰 것 같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걱정하는게 싫어서 잘 내색하지 않으려고 했던 듯. 그래서 내가 작년에 공부 너무 힘들어할 때 엄마는 처음에 믿지 못하시지 않았을까. 이런 얘기를 하다보니 눈물이 나게 됐지만, 그렇다고 부모님을 원망하는 건 절대 아니었다. 덕분에 여기까지 내가 오게 되었으니. 부모님과 이런 horizontal한 관계인 것도 좋고, 내가 좋아하는 앵무새 죽이기에 나오는 Atticus와 아이들 Jem and Scout 처럼. 근데 난 좀 다르게 살 것 같아. 세상적인 기준으로 봤을 때 커리어에 손해가 되더라도 최고의 축복인 아이들에게 더 시간을 쏟을 수 있도록. 

나는 상상도 못 할 끊김을 감당하신 예수님이 부활하셨고, 우리를 사랑하시고, 항상 중보하고 계시고 있어서 난 너무 기쁘다고. 그런 희생을 허락하신 하나님이어서 너무 다행이라고. 어떤 생각을 하셨는지 모르지만, 이렇게 계속 찌름이 있다보면 영이 반응하는 날이 오겠지. 엄마는 내가 어떤 일에 있어서 빨리 해결해버리려는 성격이 아빠를 닮았다고 하셨다. 답답한 걸 못 참는 거 같아. 공부도 계속 해야지 늘고, 인간관계도 그런거지. 정말 오래참음을 단련시키려고 작정하신듯. 이렇게 알게 해주시는 것에 감사하다. 사랑은 불완전한 사람이 함께 성숙해 나가는 것인가보다, 서로의 struggle을 함께 견뎌주고. 처음부터 모든 단추가 맞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새 옷을 사는게 아니라 오래참음으로 지켜봐주는 것. 

'그의 영광의 힘을 따라 모든 능력으로 능하게 하시며 기쁨으로 모든 견딤과 오래참음에 이르게 하시고'
골로새서 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