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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사고 졸업생, 의사·법조인보다 기업·연구소 진출 많아
모범생보다 창의적 괴짜들 배출해…자립형 사립고 역할모델 자리매김

지난달 25일 청와대에서 열린 `공교육 정상화`를 주제로 한 국무회의에서 `민사고 모델`이 화제가 됐다. 정진곤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은 "민사고의 교육 결과를 보면 해외진학반 학생들이 보다 창의적인 인재로 성장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며 "이 같은 모델이 우리 공교육 정상화의 새로운 모델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민족사관고가 올해로 졸업생을 배출한 지 10년이 됐다. `1만명을 먹여 살릴 수 있는 지도자로 육성한다`는 목표 아래 교육을 받은 이들은 지금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고 있을까. 

1999년 2월 강원도 횡성의 민족사관고는 1회 졸업생 11명을 배출했다. 이들은 그해 3월 2일 대학에 입학했다. 

사회 진출을 시작한 민사고 1~3회 졸업생의 현재를 전수조사를 통해 알아봤다. 1~3회 졸업생 67명 중 연락이 안 되는 2명을 제외한 65명의 현재를 파악할 수 있었다. 이들 중 국내외 대학에서 석ㆍ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17명과 군복무 중(4명)이거나 취업을 준비하는 사람(1명)을 제외한 43명이 사회에 진출한 것으로 나타났다. 

민사고는 1호 `자립형 사립고`다. 지난 10년간 민사고가 보여준 성과는 우리 교육 현실의 문제점과 가능성을 동시에 보여주고 있다. 민사고는 이후 설립된 자립형 사립고의 역할모델이 됐고 또 민사고가 해외 대학의 문을 두드리기 시작하자 대입제도의 벽에 막힌 대원외고 등 다른 학교도 이를 따랐다. 

1기 졸업생 중 한 명인 김성진 씨는 1999년 3월 2일 서울대 경제학과에 입학했다. 구미가 고향인 김씨는 "민족 지도자 양성이라는 모토가 마음에 들었고 학비도 전액 면제라고 해서 민사고를 택했다"고 말했다. 

김씨는 2002년 행정고시에 합격한 뒤 지난해 공군장교로 군 복무를 마치고 올해 1월 초부터 금융위원회 사무관으로 일하고 있다. 

김씨에게 민사고를 나오기를 잘했다고 느낄 때는 언제인지를 물었다. 

그는 "영어로 수업을 하다 보니 영어에 능숙하게 됐고 또 무엇보다 스스로 찾아서 공부할 수 있는 자세를 갖게 됐다"고 말했다. 1기 졸업생 사이에서 "공부도 잘했고 운동도 잘했고 무슨 일이 있어도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을 것 같았던 친구"로 기억되는 김광호 씨는 경찰대를 졸업하고 현재 경찰청에서 근무하고 있다. 

3회 졸업생으로 서울대 의대에 입학했던 박영수 씨는 현재 공중보건의로 일하고 있다. 그는 평범한 의사의 길을 가기를 거부하고 있다. 마음속에 품은 꿈 때문이다. 그는 "환자를 보는 의사도 보람 있지만 사회 전체적인 의료시스템을 고치는 보건학이나 국제보건센터 같은 쪽에 관심이 더 많고 이를 위해 준비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고등학교 때) 매일 새벽 6시 30분에 체조 끝나고 1교시 시작 전에 `출세를 위한 공부를 하지 말고 학문을 위한 공부를 하자`고 매일 제창했다"며 "그때는 귀찮고 의미 없는 짓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뇌리에 박힌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힘 있는 사람을 많이 배출한 학교보다는 소외되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정책을 만들고 사회발전을 가져오는 학문을 하는 사람들을 배출한 학교로 기억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문지성 씨는 SK에너지 R&M 전략기획팀에서 해외 자원개발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4년째 해외 자원개발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문씨는 지난해 중동 등지의 자원개발 사전검토서를 작성한 적이 있다. 이전 조사가 전무한 `백지상태`에서 떨어진 오더라 당황했지만, 어렵지 않게 사전검토서를 만들 수 있었다. 문씨는 "학교 다닐 때는 잘 몰랐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토론수업을 하고 자율적인 학습 분위기에서 고등학교를 다닌 게 큰 도움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민족사관고 제1회 졸업식이 열린 1999년 2월 강원도 횡성의 교정에서 설립자 최명재 이사장과 함께한 1기 졸업생들.
신상희 씨는 서울대 기계공학부 석사과정을 마치고 현대자동차에서 하이브리드자동차를 개발하고 있다. 

이들은 각자 다른 길을 가고 있지만 어떤 미래를 꿈꾸냐는 질문에 대부분 비슷한 대답을 했다. "민사고 졸업생으로서 사회에 어떤 기여를 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의무감으로 자리잡고 있고 또 그에 대한 답을 찾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졸업 후 10년간 `민사고`를 나왔다고 하면 "똑똑할 것"이라거나 "엘리트일 것"이라는 시선에 시달려 왔지만, "엘리트보다는 다양한 분야에서 창의성을 발휘하고 있는 `괴짜`일 뿐"이라고 입을 모았다. 문지성 씨는 "학교 다닐 때 `나 혼자가 아닌 1만명을 먹여 살릴 수 있는 지도자가 돼라`는 소리를 많이 들었지만, 지금은 조직에서 내 의견을 적극적으로 개진하고 분위기를 이끄는 것으로도 이미 `리더`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신상희 씨는 "대학교 1~2학년 때만 해도 `의사가 돼서 돈을 많이 벌겠다`는 유의 얘기를 하는 친구가 있으면 `왕따`가 될 정도였지만, 지금은 각자의 자아실현을 통해 사회에 보탬이 됐으면 좋겠다는 정도의 생각을 갖고 있는 정도"라고 말했다. 

2기 졸업생 고덕수 씨(28)는 카이스트 산업경영학과와 경영대학원을 졸업한 후 교보AXA자산운용 인덱스운용팀에서 일하고 있다. 

고씨는 "모두 고향에서 1등 하던 친구들과 공부하면서 `누군가의 우위에 서는 것` 자체가 어렵다는 것을 배운 것 같다"며 "진정한 리더십은 우위에 서는 것이 아니라는 겸손함을 배운 게 가장 큰 소득"이라고 말했다. 

[정석우 기자 / 서유진 기자]


선배님들이 존경스럽다. 모두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고 계신것 같다.
인터뷰에 나온 것처럼, 매일 아침 교훈을 다같이 말하고, 한복을 입고,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특별히 민족주체성에 대한 수업을 받은 적은 없지만, 내가 받는 교육이 내 이익을 넘어서 한국, 그리고 세계를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 같다.
내가 재정적으로 도울 수 있을 때까지 모교가 굳건히 있어주길 바랄뿐이다. 어떤 힘든 일이 있더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