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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법-사랑받는법
너에게 보내는 마음/자기앞의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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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배웠다.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나를 사랑하게 만들 수 없다는 것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사랑 받을 만한 사람이 되는 것뿐임을.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의 선택에 달린 일.

나는 배웠다.
내가 아무리 마음을 쏟아 다른 사람을 돌보아도
그들은 때로 보답도 반응도 하지 않는다는것을.
신뢰를 쌓는 데는 여러 해가 걸려도 무너지는 것은 한 순간임을.

삶은 무엇을 손에 쥐고 있는가가 아니라
누가 곁에 있는가에 달려 있음을 나는 배웠다.

우리의 매력이라는 것은 15분을 넘지 못하고
그 다음은 서로를 알아가는 것이 더 중요함을.
다른 사람의 최대치에 나를 비교하기 보다는
내 자신의 최대치에 나를 비교해야 함을 나는 배웠다.

삶의 무슨 사건이 일어나는가에 달린 것이 아니라,
일어난 사건에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달린 것임을.

또 나는 배웠다.
무엇이 아무리 얇게 베어 낸다 해도
거기에는 언제나 양면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내가 원하는 사람이 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언제나
사랑의 말을 남겨 놓아야 함을 나는 배웠다.
어느 순간이 우리의 마지막 시간이 될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므로
두 사람이 서로 다툰다고 해서
서로 사랑하지 않는 게 아님을 나는 배웠다.
그리고 두 사람이 서로 다투지 않는다고 해서
서로 사랑하는 게 아니라는 것도.
두 사람이 한가지 사물을 바라보면서도
보는 것은 완전히 다를수 있음을.

나는 배웠다.
나에게도 분노할 권리는 있으나
타인에 대해 몰인정하고 잔인하게 대할 권리는 없음을
내가 바라는 방식대로 나를 사랑해 주지 않는다 해서
내 전부를 다해 사랑하지 않아도 좋다는 것이 아님을.

그리고 나는 배웠다.
아무리 내 마음이 아프다고 하더라도 이 세상은
내 슬픔 때문에 운행을 중단하지 않는다는 것을
타인의 마음에 상처를 주지 않는것과
내가 믿는 것을 위해 내 입장을 분명히 하는것.
이 두가지를 엄격하게 구분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나는 배웠다
사랑하는 것과 사랑을 받는것을.


-샤를르 드 푸코-




유기농 연애
너에게 보내는 마음

어릴 적엔 누구나 혓바닥을 시퍼렇게 만드는 사탕과 속이 쓰릴 정도로 매운 길거리표 떡볶이에 열광한다. 나 역시 별반 다르지 않은 꼬맹이였던 지라 '잡곡밥에서 콩 골라내기'는 20년 넘는 세월 동안 터득한 필살의 기술이다. 왜 맛있는 것들은 죄다 몸에 안 좋은 걸까? 왜 몸에 좋은 것들은 맛이 없을까?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다.

남자 역시 마찬가지. 알록달록 눈이 즐겁고 첫 맛이 강렬한 남자들은 십중팔구 '불량식품과' 에 속한다. 하루가 멀다 하고 이벤트를 펼치고 대학교 강의실 앞에서 꽃 들고 기다리는 남자. 생전 받아보지 못한 공주 대접에 갸륵해하며 못 이기는 척 넘어갔지만 연인 사이의 모든 갈등이 비 오는 날 집 앞에서 무릎 꿇고 있으면 해결된다고 생각하는 유치함에 두 손 두 발 다들었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닭살 돋았다). 말 수 적은 남자가 멋있어 보이는 시기도 있었다. '내가 세상과 당신을 연결하는 다리가 되어주리라' 라는 얄궂은 전투욕에 불타올랐지만 그런 사랑의 결말은 대개 두 가지다. 타인과 소통할 줄 모르는 나르시즘에 지쳐 나가 떨어지거나, 파고 파고 들어갔더니 정작 그 속에 아무 것도 든게 없어 허무해지거나. 외모만 번지르르한 남자는 대게 얼굴 값을 한다. 숱한 여성들을 울린 전력을 자랑스레 떠벌리는 그 얼굴에 '계집질 확정' 이라고 씌어 있는데도 불구하고 '나만은 특별하겠지' 라는 생각으로 시작하는 연애, 딱 한 마디만 하겠다. 사람은 잘 변하지 않는다.

모든 책임을 상태 불량한 남자들 탓으로 돌리고 나면 꽤나 홀가분해진다. (나 역시 그들에게 나쁜 여자였다는 사실쯤은 가뿐히 제치고). 그리고 작은 희망을 품는다. 그들에게서 벗어나면 나에게도 '이토록 달콤한 순간' 이 찾아오겠지. 서로를 구속하려 들지도 않고, 모자란 사랑에 허덕이지도 않고, 질질 짜며 에너지 소진할 필요도 없는 궁극의 연애가, 인공 감미료의 찜찜한 뒷맛 따윈 깔끔하게 날려버리는 성숙한 어른의 연애가!

그리고 나서 나는 한 남자를 만났다. 그는 셀카를 찍어 미니홈피 메인화면에 올려놓지도, 혈액형별 성격을 게시판에 잔뜩 퍼오지도 않는 남자다. 정장 재킷 안에 후드 티셔츠를 입지도 않고, 면 음식을 먹을 때 후루룩 소리를 내지도 않는다. 내가 밥 값을 낸다고 해서 바르르 떨지 않고, 레스토랑에서 모르는 메뉴를 주문할 때도 주눅 들지 않는다. 오버 액션을 취하며 차 문을 열어주지 않는 반면 다른 사람을 배려하기 위해 나를 불편한 자리에 앉히지도 않는다. 자신의 지인들을 자연스레 나에게 소개시키며, 손을 잡을 때 헐렁하게 손에 힘을 빼는 내 버릇에 대해 잔소리를 늘어놓지 않는다. 무엇보다 관계에 지나치게 집착하거나 지나치게 소홀하지 않는다.

자, 그리하여 이제 나의 연애는 아무 문제 없이 흘러간다. '아무 일 없는 어느 연인의 하루' 란 타이틀의 영화를 한 편 찍어서 상영해도 될만큼 완벽하다 (그런데 그 영화는 과연 누가 볼까?). 하루에 열 두 번쯤 휴대폰을 보지도 않고, 상대의 일거수 일투족을 꿰고 있지도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갑자기 연락이 두절되거나 그에게 새로운 여자가 나타난다거나 하는 '사건' 도 없다. 이쯤에서 나는 회심의 미소를 지어야 할까?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내가 간과한 사실이 하나 있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사디스트라는 것! 파닥파닥 뛰지 않는 연애에 결핍이 없다면 거짓말이다. 사실은, 조금 지루하다. 게다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자 슬슬 불안해지기 시작한다. "그런건 연애가 아니지 않나? 이미 식어버린거 아냐?" 라는 친구의 말에 희미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그게 20대에 할 연애냐? 무슨 노친네들도 아니고" 라는 다른 친구의 말에도 크게 반발하지 않는다.

밍밍한 연애에 조미료를 쳐야 되나, 진지하게 고민하던 중 케이블에서 재방송하는 '연애시대' 를 다시 보게 됐다. 떠보고, 의심하고, 자존심 지키기에 전전긍긍하며 '사랑이 뭘까' 를 집요하게 묻던 그 드라마의 라스트 신을 기억하는가. 먼 길을 돌아 다시 만난 두 주인공은 한낮의 공원에서 나른한 피크닉을 즐긴다. 햇살은 통속적으로 빛나고, 카메라 앵글은 지루하게 빙빙 돈다. 그들은 크게 웃지도 않고, 마냥 달콤해 보이지도 않는다. 그 장면은 우리에게 행복은 졸린 일상에 가깝다고 말한다. 정작 행복한 순간에는 그 누구도 행복을 인지하지 못하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가 원하는 행복의 꼭짓점, 궁극의 연애는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손을 잡고, 눈을 맞추고, 연신 얼굴을 쓰다듬지 않아도 관계는 지속된다. 그저 작은 카페 구석에 처박혀서 하루 종일 각자 보고 싶은 책만 보다 헤어져도 섭섭하지 않은 형태의 연애도 있는 것이다. 이런 연애가 정신 건강에 좋을까, 나쁠까? 잘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불량식품으로 삼시 세 끼를 때울수는 없다는 것. 그리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지루하던 어느 오후 문득 운전대를 잡고 있는 손을 보며 이 남자 손이 이렇게 생겼었지, 하고 생각하는 것도 그리 나쁘지는 않다고. 최근에 나는 그렇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제 나는 오일프리 샐러드도 거친 건강빵도 꼭꼭 씹어 잘 먹는다.


유기농 연애. 마리끌레르 7월호

글 : 김지선, 에디터: 이지연

사랑을 말하다
너에게 보내는 마음

오늘 무슨 꽁트 같았잖아 부조리극 같은거
서로에게 했던 말만 또하고 또하고.

'미안하다'고 해서
'미안한 걸 알면서 왜 그러냐'고 했더니
'그러니까 미안하다고 하지 않았냐'고 '미안하다'고.
그래서 내가 '미안하면 그러지 말라'고 했더니
그래도 그냥 '미안하다'고 하고.

그렇게 이상한 대화가 이어지는 중에 내가 또 한번 그렇게 말할려고 했거든?
지금까지 나한테 한건 안 미안해도 되니까 그냥 다 없었던걸로 하고 오늘 이것도 다 없던걸로 하자고.
안 미안해하면 되잖아. 그럴 수 있잖아.

그렇게 말하려는데 니 입술이 눈에 들어오더라
나처럼 벌벌 떨고 있지도 않았고
아무 말도 못하겠어서 꽉 깨물고 있는 입술도 아니고
그냥 다물고있는거.

그래서 알았지..
'아... 오늘 너는 그 한마디만 가지고 나왔구나...'
내가 무슨 말만 해도 미안하다 그렇게만 말하겠구나.
내가 너무 늦었구나.

말로 하면 다 풀릴거라고 믿었어

우리가 서로 한번씩 짜증스러워하고 서운해했던 일도 다 서로 말을 안해서 그런거라고
서로 오해가 있어서 그렇지 하루쯤 날 잡아서 묵은 청소를 하듯 다 말하고 나면 괜찮아질 거라고
오늘 해도 좋지만 말하면 길어질테고 또 오늘은 좀 피곤하니까 다음에 해야겠다고
니 마음이 조금 흔들리는 거 같아도 괜히 물어보면 싸우기나 할 거 같아서 기다리면 어차피 괜찮아질 거니까
니 마음이 제자리로 온 거 같으면 그 때 모른척 말해야겠다고

'나한테 너밖에 없는 거 알지? 너도 그거 꼭 알아라~'

할말이 많이 밀리긴 했지만 그래도 다 쌓아놨는데, 그래서 말하기만 하면 된다고 믿었었는데
오늘 니가 가지고 나온 말이 딱 하나네
미안하다


제임스딘이 그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영원히 살 것처럼 꿈을 꾸고, 내일 죽을 것 같이 오늘을 살라'고

어느 영화 감독은 그 말을 비틀어서 이렇게 이야기했죠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영원히 살 것처럼 오늘을 대충보내고 내일 죽을 거 같이 꿈을 꾸지 않는다'고


영원히 사랑할 것처럼 너를 꿈꿨더라면
내일 헤어질 것처럼 오늘 사랑했더라면

대화로 모든 걸 풀 수 있다는 말, 하지만 그건 들어 줄 사람이 기다려 주는 동안에만 가능한 일이라고



사랑을 말하다
사랑할 때 배워야 할 어려운 것들 中
너에게 보내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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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눈빛 하나, 걸음걸이 하나가 우주만한 무게로 다가오는 것은

두려운 일일까, 황홀한 일일까? 그 사람의 지나가는 말 한마디에 울고 웃고,

그 사람이 좋다고 한 책, 좋다고 한 영화, 좋다고 한 음악은

갑자기 세상에 둘도 없는 걸작으로 위상이 급변하는,

스스로 생각해봐도 줏대를 상실한 반응들..

 

사랑은 그렇게 정체성의 혼돈과 함께온다.

내가 나라는 사실보다 더 절실한 문제가 생겼기 때문이다.

'그 사람의 마음에 들고 싶다는 생각',

'그 사람의 마음에 들기 위해서라면 이전의 나를 기꺼이 포기할 수 도 있다는 생각',

 

사랑이 위대한 것은 이처럼 (어쩌면 목숨과도 같은) 자기의 정체성을 자진해서 허물어뜨리도록 만드는 유일한 사건이기 때문이다.

나의 취향, 나의 습관, 나의 개성, 나를 보호하고 있던 낡은 틀이 깨지면서

우리는 '살짝' 죽고 다시 태어난다.

사랑때문에, 우리는 인생을 다시 배울 기회를 얻는다.

그리고 아주 성공적인 경우, 사랑은 우리를 더 나은 인간으로 만들어준다



 

paper November 2004 60p. *사랑할 때 배워야 할 어려운 것들 中

사랑을 말하다
너에게 보내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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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aker on please>

"네가 연애한 지 몇 년 됐지?"

"음.. 12월 되면 딱 6년이지 아마?"

"하~ 대단하다"

"흐~ 내말이"

"야 근데.. 넌 혹시 뭐 좀 그럴 때 없어? 뭐.. 그러니까 아무래도 오래 만났으니까 왜.."

"뭐..  뭐 지겹다는 생각?"

"아니 뭐 지겹다기 보다는.. 뭐 말하자면 그런 거.."

"뭐 가끔 그렇게 물어 보더라 사람들이.. 근데.. 뭐 솔직히 잠깐 그랬던 거 같기도 해 한 1, 2년 전인가.. 

근데 지금은 그런 생각도 안 해 왜냐하면 그냥 원래 나는 그렇게 살아온 것 같고

원래부터 내 여자친구가 내 옆에 있었던 것 같고.."



"어.. 너도 그렇구나"

"누가 또 그러는데?"

"아니 회사에 또 너네같이 징그러운 커플 하나 있거든

 그쪽에도 물어보니까 똑같은 소리 하더라

 이젠 지겹다는 말 자체가 되게 낯설고 뭐 남의 얘기 같다고"

"근데 너 왜 갑자기 그런 걸 묻고 다녀? 논문 쓰냐? 뭐 장수커플의 비결 뭐 이런 거?"

"아니 그냥.. 얼마 전에 식구들끼리 다 모여가지고 마루에서 과일 먹는데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

나는 걔하고 그렇게 좋아했으면서도 2년도 못 채우고 헤어졌는데

우리 부모님은 뽀뽀도 안 해보고 그냥 선봐서 결혼했다면서 30년 넘도록 잘 사시잖아  그게 너무 신기하더라구...

 그렇다고 엄마 아빠한테 그렇게 물어볼 수는 없잖아

 '아니 두 분은 왜 이때까지 안 헤어지셨어요? 안지겨우세요?' 그래서 그냥 너한테나 물어본 거지 뭐..

 비결이 뭘까?  그렇게 별나게 사랑했던 우리는.. 이렇게 빨리 헤어지고

 우리 부모님이나.. 너나.. 어떻게 그렇게 오래 사랑하면서 살지?"






"갑자기 그 얘기가 생각난다"

"뭐"

"뭐.. 옛날에 어떤 유명한 화가가 있었는데  그 사람이 애인한테 초상화를 그려주면서

얼굴에 난 점이랑 여드름까지 다 그렸대... 그러니까 그 여자가 좀 싫어하면서 그랬겠지

 '어~ 이런 건 좀 지워주시지~흥흥' "

"그냥 네 목소리로 말하면 안 돼?"

"어 미안... 암튼 그런데 그 화가는 싫다고 했대 나는 네 점도 너무 귀여워가지고 그거 꼭 그려야겠다고..

 근데 그 여자는 계속 그거 지워달라고 하고.. 이 화가는 싫다고 하고.. 뭐 그러다가 헤어 졌대"

"뭐?"

"그렇게 유명한 화가랑 그런 화가를 반하게 만들만큼 멋진 여인이  헤어지는 이유는 그런 식인거지

 너무 다양하고.. 사소하고.. 

근데 안 헤어지는 이유는 그 이유에는 별게 없대

그냥 좋아서 만나다보니 1년이고 싸웠다가도 참고 그러다보니까 5년 되고 

정들다보니 10년이고 결혼해 살다보니 30년이고.."

"야 그 화가 이름이 뭐냐?"

"아 몰라~ 옛날 사람이고 유명했고 저 뭐 네덜란드 사람인가?"

"네덜란드면 렘브란튼가? 고흔가? 아 몬드리안?"

"어? 어 그래그래 모.. 몬드리.. 뭐.. 그 사람인가보다.."

"근데 몬드리안이 초상화를 그렸다고?"

"아.. 진짜.. 야!!  넌 네가 그러니까 안 되는 거야 !! 내가 이때까지 한말 뭘로 들었냐? 

사소한 거에 연연하지 말라니까 .. 그냥 그런가보다, 그럴 수도 있나보다 하고 통째로 이해를 해야지"

"알았어.. 에이 괜히 모르니까 성질내고 그래.."

"아이 그냥 받아들이라고.. 통째로 이해하라고.. 응?"

불행한 커플은 늘 이유가 많다고 하죠

무엇이 맞지 않고 무엇이 서운하고

너의 무엇이 견딜 수 없이 피곤하다고..



하지만 행복한 커플은 별 이유가 없다고 합니다

원래 몸이 약한 사람이 그냥 그 약한 몸으로 잘 살듯이

원래 안 예쁜 사람이 그냥 그 얼굴로 잘 살듯이

그렇게 살았다고 합니다




사랑을 말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