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dreaming
live love




조용한 모드의 학교를 만끽할 날도 2주정도 남았다

도서관에 가면 무한 낮꿈꾸기가 이뤄진다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


worthy
live love/새로움의 나날

2. 존귀함

 

우리 가족은 꾸준하게 함께 뭔가를 한 적이 없다. 단기/ 중장기 적으로 한 것은 도서관에 가서 식구별로 흩어져 책을 골라 함께 대여하거나, 여행을 가거나, 어느 특정 지역에 살 때 절에 간다거나 교회에 간 적은 있다.  필 받을 때 산을 오르거나 맛집을 찾아 시외로 드라이브 가는 것.  

 

그런 내가 친구의 손에 이끌려 중학교 때 교회에 가서 마음 맞는 친구들을 만나고, 고등학교 때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것은 기적 그 자체. 매주 가면서도 중학교 때는 믿지 않았는데 기숙고등학교를 간 건, 편안함과 안정감을 주는 집에서 떨어져야 가능해서 그랬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사랑하는 친구들, 선배, 후배들과 따뜻한 온돌 바닥에서 뒹굴며 맛난 주전부리를 먹으면서, '나만, 우리만 이렇게 행복해도 되는걸까' 하고 문득 생각했던 것 같다. 직접 전쟁을 본 적은 없지만 수 많은 전쟁의 역사로 가득한 국사와 유럽사 공부를 하면서, 꽃동네 할머니 할아버지 기저귀를 갈아드리면서, 춘천과 필리핀에서 해비타트를 하며 만난 사람들과 풍경이 '부족하지만 도움이 될 수 있는 곳에서 내가 받은 사랑과 은혜를 나누고 싶다'는 기도로 이어졌는지도. 

 

고등학교 때부터 그렇게 가보고 싶었던 아프리카 국가들을 드디어 대학원에 들어와서 가볼 수 있었다. 세계 국가들을 경제적으로 나열하면 하위 10개국가와 순위 다툼한다는 말라위와 나름 아프리카의 정치 수도인 아디스아바바가 위치한 에티오피아. 24살 된 딸이 아프리카에 가겠다고 하니 걱정을 많이 하셨지만 한국인 과 선배들과 함께 말라위에서는 한국 부자가 세워준 병원 숙소에서, 아디스아바바에서는 코이카 협력의사의 숙소에서 지낸다고 하니 아프면 금방 치료 받겠거니 하고 허락해주셨다. 

 

여러번 방문하며 어린 꼬마부터 할아버지/할머니까지 만나면서 '나에겐, 우리에겐 이렇게 좋으신 하나님인데 그들에게도 그럴까'하는 의문이 모두 풀렸다. 무기력함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한국이나 미국에도 똑같이 그런 사람들은 있으니까. 독립 이후 한국보다 에티오피아는 잘 살았었는데 지금은 비교가 안 되는 사정인게 놀라울 따름이라는 반응을 받았지만, 두 나라 모두에서 중국인보다 한국인에게, 서양인들보다 한국인들에게 훨씬 우호적인 것이 참 신기하게 여겨졌다. 한 명, 한 명 만났을 때 모두 사랑받아야 할 존재이고, 귀하게 느껴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와줘야 할 집단"이라는 인식은 쉽사리 바뀌지 않았다. 교통, 의료, 교육, 농업.. 바뀌어야 할 요소들이 너무 많아서. 에티오피아보다 말라위는 더욱. 

 

개발학에서는 원조를 최소화(혹은 주지 않고) 각 나라가 bottom-up으로 바뀌도록 도와야 한다는 입장과, 세밀화된 원조로 변화를 줘야한다는 입장으로 나뉘어진다. 지난 4년간 공부하면서 느낀 건, "이게 정답일거야" 하는 마음으로 시작하지 않고, 각 나라의 상황과 이해관계를 파악한뒤 상황에 맞는 섬세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게 좋지 않을까? 

 

이 생각은 이번 베트남 방문으로 다시 한번 확인되었다. 내가 읽고, 듣고, 베트남 통계청 자료와 연구한 것과 다른 많은 것들을 깨닫고 왔다. 말라위에서 느꼈던 따뜻함을 베트남 사람들에게서 느꼈다. 전세계에 남은 5개 사회주의 국가 중 하나인데.. 아니나 다를까 이번에 만났던 대부분의 정부 관리자들은 비밀스럽고, 말이 잘 통하지 않았지만 오히려 국영기업이나 국가 산하 사회과학 연구소, 대학 교수들은 솔직하게 대답해준 부분들도 많았다. 가난한 지역에서 선발되어 요리사 과정을 밟고 있는 20대 초반 친구들도. 그들과 소통하면서 사람 한 명 한 명을 넘어 개도국 사람들도 드디어 진심으로 존귀하게 느끼게 되었다. 베트남을 넘어 말라위까지. 

 

결핵과 전염병이 만연했던 조선 땅에 왔던 선교사님들도 그런 마음으로 오셨기에 상상초월하는 모습이었을 하층계급민도 사랑하고 모든 이가 평등하다고 전하지 않았을까. 

 

예수님을 정말 닮고 싶다면, 사랑한다면 약한자를 긍휼하게 느끼는 것을 뛰어넘어 진정 존귀하게 여기는 마음을 매일 주시길 기도하는 사람이여야 겠다는 생각이 든 2014년 여름. 무한 경쟁과 내것부터 챙기자는 사회 분위기는 그런 마음을 너무 쉽게 갉아먹기에. 

 

"... 그러고 나서 왕은 왼쪽에 있는 사람들에게 말할 것이다. '이 저주받은 사람들아! 내게서 떠나 마귀와 그의 부하들을 위해 마련된 영원한 불 속으로 들어가라. 

너희는 내가 배고플 때 먹을 것을 주지 않았고 내가 목마를 때 마실 것을 주지 않았다. 

내가 나그네 됐을 때 너희는 나를 맞아들이지 않았고 내가 헐벗었을 때 입을 것을 주지 않았다. 

내가 병들고 감옥에 갇혔을 때 너희는 나를 보살펴 주지 않았다.'

그들 역시 대답할 것이다. '주여, 주께서 배고프시거나 목마르시거나 나그네 되시거나 헐벗으시거나 병드시거나 감옥에 갇히신 것을 언제 우리가 보고 돌보지 않았다는 말씀입니까?' 

왕이 대답할 것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무엇이든 너희가 여기 있는 사람들 중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에게 하지 않은 것이 곧 내게 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영원한 벌에, 의인들은 영원한 생명에 들어갈 것이다. (마태복음 25:41-46)"

 

마태복음 25장 31절부터 마지막 심판에 대해 처음으로 전하시는 예수님은 ​나를 믿으면 무조건 전부 천국가~ 라고 하지 않으셨고 세세하게 행동할 포인트를 나열하신다. 

배고픈 이, 나그네, 병들고 감옥에 갇힌 이를 돌보라고.

 

그럼 약속하신 대로 오늘 내게, 매일매일 내게 마음 가게 하시는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에게 마음, 손길, 눈길, 시간 and/or 재물을 내어주는 나이길 구합니다. 

그래서 오늘 나에게 의의 옷을 입혀주시는 것처럼 내 이웃(가족, 친구 of all ages, 옆집 사람, 과 친구들, 교수님들, 연구하는 베트남, 인도사람들)에게도 사랑을 전할 수 있도록. 

 

... 너희도 이와 같다. 너희가 지금은 슬퍼하지만 내가 너희를 다시 볼 때는 너희가 기뻐할 것이요, 또 너희 기쁨을 빼앗을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날에는 너희가 내게 어떤 것도 묻지 않을 것이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무엇이든 아버지께 구하면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주실 것이다.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구하지 않았다. 

그러나 구하라. 그러면 받을 것이니 너희 기쁨이 충만해질 것이다. 

지금까지는 내가 이것을 비유로 말했지만 더 이상 비유로 말하지 않고 내 아버지에 대해 분명하게 말할 때가 올 것이다. 

그날에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구할 것이다. 내가 너희를 위해 아버지께 구하겠다는 말이 아니다. 

아버지께서는 너희를 친히 사랑하신다. 아버지께서 너희를 친히 사랑하시는 것은 너희가 나를 사랑했고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왔음을 믿었기 때문이다. 

요한복음 16: 22-27


live love/새로움의 나날

2년만에 경험한 한국의 여름은 감사하고 조금 더 단단해진 내 자신을 발견한 시간이었다. 

 

1. 곁

 

연구가 조금 더디게 되더라도 다급한 아빠의 카톡메시지와 잘 따라주지 않는 몸으로 인해 속상한 엄마의 곁을 지켜야 겠다는 마음으로 탄 한국행 비행기. 함께 기도해준 모든 사람들 덕분에 도착했을때와는 차원이 다른 모습인 부모님을 공항에서 뒤로한채 돌아올 수 있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주님ㅠㅠ

 

아직도 내게는 부족한 삶과 사회에 대한 열심을 아빠 엄마의 삶에서 다시 한번 볼 수 있었다. 논설 + 리더의 서재에서 + 박사과정 + 매일매일 운동 + 온갖신문 매일 섭렵하시는 아빠. 게다가 이제는 청소, 빨래, 설겆이까지 누가 말하기도 전에 먼저 도와주신다. 엄마의 건강쥬스는 아빠 담당! 

 

겨울 사건 이후 운전도 안하시고, 통학버스가 다니는 서울의 한 동네로 이사온 뒤 주로 걷거나 대중교통을 사용하시는 엄마는 5kg 정도 감량하신 상태였다. 몸 상태는 많이 회복되었으나 아직도 마음 한켠엔 헛헛함을 느끼고 계신 것을 감지할 수 있었다. 엄마 학교에서 다른 교수님들과 함께 점심식사도 하고, 학교 앞 엄마 원룸에서 같이 잠도 자고, 새로 이사온 동네 앞에 있는 시장에서 엄마도 나도 태어나서 처음 보는 나물들로 요리도 하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눌 수 있었다. 양념 만들기부터 동아시아 현대사까지. 

 

큰이모가 소개키셔주신 이수역 맑은손 공동체 시력장애 안마사들의 마사지로 뭉친 근육을 주로 풀어 주시다가 6월 중순부터는 내가 다니던 센트리얼 필라테스도 같이 다니셨는데, 몸이 좋아지시는게 느껴지신다며 좋아하셨다. 유연성 떨어지는 사람들에겐 기구쓰는 필라테스 완전 추천! 응용할 수 있는 포지션도 다양해서 재밌고, 호흡 제대로 하면서 포즈도 제대로 취하면 정말 운동된다. 필라테스 절대 쉽지 않음. 

 

외갓집 식구들과 함께 간 여행, 자매셋의 아이들끼리의 식사, 이모들과의 식사 등에서 나이가 들어가면서 타인을 진정으로 아끼고 사랑하는 것이 얼마나 귀한지를 다시 한 번 느꼈다. 상대가 어이없는 말을 하더라도 진심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고, 그 상대의 처지를 이해하는 큰 이모, 외삼촌과 외숙모. 엄마가 누워있는 모습을 보니 혈압이 오르는 것을 신체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는 작은 이모. 마음 터놓고 얘기할 수 있는 언니들이 있어서 너무 좋다고 하는 작은 이모. 이분들의 어릴적 얘기를 들으면서 이런 가족을 주셔서 감사하고, 더 이해할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하고, 담담뿐만 아니라 사촌오빠들과 또 다른 여동생이라는 큰 가족을 주셔서 너무 감사했다. 

 

이번 여름엔 엄마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교회에 등록하셨다. 뉴욕에서 내가 다니는 교회와 비슷하게 청담동에 청소년수련관을 빌려서 매주 예배를 드리는 새길교회. 강압적으로 믿도록 하는 것이 아닌 예수님의 사랑과 가르침이 스며들도록 곁을 내주고, 함께 해주는 그런 교회였다. 한국 교회에 대한 답답한 소식을 뉴욕에서 많이 접했었는데, 회개와 소통이 이루어지는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니 답답한 한국 사회에서 숨을 쉴 수 있겠다고 처음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인천공항에서 수속 전에 아빠가 먼저 논설을 토요일에 미리 써놓고 매주일엔 엄마와 예배를 드리시겠다고 말씀해주셔서, 처음으로 안도하며 눈물 조금 몰래 흘리고 떠났던 것 같다. 2년전에 진짜 펑펑펑 울어서 엄마 마음을 많이 아프게 해드렸었는데...

 

친구들은 바쁜 와중에도 나와 여러번 만나주었다ㅠㅠ 20대후반에 접어든 우리, 아직 불확실 한 것도 많고, 성공의 잣대와 아름다음의 기준이 획일화된 한국 사회에서 건강한 마음과 몸을 갖기란 쉽지 않지만,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이 너무 아름다웠다. 친구들 곁에 좋은 사람들이 있기를 기도하며, 언젠가 한동네 살 그날을 꿈꾼다 히힛 이번에 나눈 우리들의 꿈: 여자농구팀 구단주, 올림픽 승마 대한민국 대표선수, LGBT friendly Seoul, 남성잡지 성컬럼니스트 & 기와로 된 북카페 주인. 

 

daydreamer로 살아내는 하루하루!

 

다음번엔 베트남에서 느낀 존귀함과 꾸준함에 대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