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명의 사랑
이연주
정말 꽃이 되고 싶어, 또는 구름
아홉 배는 내가 더 당신을 사랑할걸---그런 꽃,
새털 옷을 입고
당신 고향 가는 길 앞질러 따라가는
그런 구름.
석간신문이 배달됐지만 의미가 없네.
죽은 고양이도 쥐떼들의 혼령도
이제 더는 문간 근처를 얼쩡거릴 수가 없어.
꽃의 사랑, 혹은 구름.
정부 쪽에선 비밀에 부치겠지?
군중심리란 게
사랑에 오염된다면 전략은 힘들어지기 마련이니까.
그러나 공기는 느끼지.
바람은 느끼고말고.
내가 당신, 하며
꽃가루를 공중에 뿌려주면 공기들은 명랑해질 거네.
새털 옷은 하늘을 얼마나 기쁘게 할까,
사랑인데.
뉴스를 자세히 읽지 않아도 요즘 2008년 하계 베이징 올림픽이 시작하기 전에 봉화 relay가 이뤄지고 있는 것은 많은 이들이 알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headline만 읽어도 파리에서 샌프란시스코에서 시위때문에 봉화 relay가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시위는 티벳의 자유를 요구하는 시위, 그리고 티벳에서도 봉화 relay를 하겠다는 중국 정부의 뜻에 반대하는 시위다. 수요일에 중국대사관 앞에서 NYU학생들과 컬럼비아 학생들과 함께 시위를 하고 Union Square에서 하는 rally를 같이 가지 않겠냐는 jy의 말을 듣고 생각해 보다가 어제 2시반에 수업이 끝나자마자 다른 컬럼비아 학생들과 만나서 중국대사관으로 내려갔다. (사실 6시에 수업이 하나 있었는데 선생님이 이런 일이 있으면 당연히 다녀오라고 괜찮다고 해주셨다)
중국대사관은 42nd street and 12nd avenue에 있었는데 Hudson강이 바로 보이는 곳이었다. 그 곳에 도착하니 학생들뿐만 아니라 티벳인들도 와 있었다. 처음에 무슨 말을 외치는지 잘 이해가 안갔는데 이런 구호들을 외치고 있었다.
One World One Dream Free Free Tibet
No Human Rights, No Olympics
No Freedom, No Justice
No Freedom, No Olympics
Bejing Olympics is bloody olympics
Boycott Beijing Olympics
Liar Liar Hu Jintao
China is a liar
China lies, UN listen
UN listen, we want justice
Welcome Welcome UN
Welcome Welcom Ban Ki Moon
Free the political prisoners
No more torture in Tibet
No more shootings in Tibet
등등 지나가는 사람들이 들어도 티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금방 알 수 있는 구호들이었다.
사실 중국이 무력으로 티벳인들을 진압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지만 사진을 직접 보니 한국이 민주화항쟁을 할 때와 비슷한 상황인 것 같았다. 무고한 사람들이 심하게 부상을 입은 사진들이었다.
어제 티벳에 배운 것들은
1. 1949-50년 중국이 티벳을 침략했고 그 후 6천개의 사절이 파괴되었고 120십만 티벳인들이 살해되었다. 또 많은 람들이 종교, 정치적 사상때문에 감옥에 갇혀있다.
2. Dalai Lama는 1959년 티벳을 탈출할 수 밖에 없었고, 인도에 임시정부를 만들었고, 평화시위노력으로 1989년에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3. 티벳은 원래 중국과 다른 나라였다. 다른 정부, 화폐, 언어, 법과 문화가 있는 곳이었다. 1950년전에는 티벳정부와 영국, 몽골, 네팔간에 합의한 treaty도 있었다.
4. Dalai Lama다음으로 높은 Lama인 Panchen Lama는 6살때부터 감옥에 갇혀있다.
5. 중국정부는 티벳에 계속 중국인들을 보내 이제 티벳의 많은 도시에는 티벳인보다 중국인이 더 많게 되었다. (티벳에 철도를 다 놓아 중국인을 계속 보냈다)
중국이 natural resource를 찾아서 여러나라들과 거래하고 있는 것은 몇 주전 중국에 대한 기획보고서가 나왔던 이코노미스트를 읽고 알 수 있었다. 티벳에도 우라늄을 포함한 자원이 많아 중국이 쉽게 포기하고 싶지 않는 관계일 것이라 생각된다.
시위를 하는데 보니 거의 다 티벳사람이고 한국인은 나랑 jy, 미국인은 엔와유에서 온 두명이랑 컬럼비아에서 간 두명뿐이었다. 하는 동안 고등학교때 친구들, 선배님들과 함께 중국의 한국역사왜곡하는 것에 대해서 경복궁에서 중국대사관을 교복을 입고 평화시위했던 것도 생각나고, 한민족의 독립을 위해서 목숨까지 바치신 열사들도 생각나고. 이런저런 생각이 많이 들었다. 특히 Union Square에서 할 때는 사람들이 워낙 많이 지나가는 곳이다 보니 미국인들도 지나가다가 함께 구호를 외쳐주는 것을 보고 조금 놀랐다. 뉴요커들은 워낙 바쁜척 하니까 그냥 지나칠 줄 알았는데. 5명의 Tibetan-American 고등학생들이 삭발을 하였고, 그들은 작은 연극도 준비하여 대중에게 보여주었다. 티벳에 살지 않았어도 부모님, 조부모님들의 가족이 당하고 있는 고통을 생각하며 준비했을지, 무슨 생각을 하면서 준비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고등학생들이 그렇게 준비한 것을 보고 도전받았다. 한국유학생으로서 미국에서 공부하면서 내가 가져야할 마음가짐은 어떤 것인지.
티벳관련된싸이트:
www.studentsforafreetibet.org
www.tibetjustice.org
www.hrichina.org (human rights in china)
www.laogai.org (forced labor camps research foundation)
나는 배웠다.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나를 사랑하게 만들 수 없다는 것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사랑 받을 만한 사람이 되는 것뿐임을.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의 선택에 달린 일.
나는 배웠다.
내가 아무리 마음을 쏟아 다른 사람을 돌보아도
그들은 때로 보답도 반응도 하지 않는다는것을.
신뢰를 쌓는 데는 여러 해가 걸려도 무너지는 것은 한 순간임을.
삶은 무엇을 손에 쥐고 있는가가 아니라
누가 곁에 있는가에 달려 있음을 나는 배웠다.
우리의 매력이라는 것은 15분을 넘지 못하고
그 다음은 서로를 알아가는 것이 더 중요함을.
다른 사람의 최대치에 나를 비교하기 보다는
내 자신의 최대치에 나를 비교해야 함을 나는 배웠다.
삶의 무슨 사건이 일어나는가에 달린 것이 아니라,
일어난 사건에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달린 것임을.
또 나는 배웠다.
무엇이 아무리 얇게 베어 낸다 해도
거기에는 언제나 양면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내가 원하는 사람이 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언제나
사랑의 말을 남겨 놓아야 함을 나는 배웠다.
어느 순간이 우리의 마지막 시간이 될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므로
두 사람이 서로 다툰다고 해서
서로 사랑하지 않는 게 아님을 나는 배웠다.
그리고 두 사람이 서로 다투지 않는다고 해서
서로 사랑하는 게 아니라는 것도.
두 사람이 한가지 사물을 바라보면서도
보는 것은 완전히 다를수 있음을.
나는 배웠다.
나에게도 분노할 권리는 있으나
타인에 대해 몰인정하고 잔인하게 대할 권리는 없음을
내가 바라는 방식대로 나를 사랑해 주지 않는다 해서
내 전부를 다해 사랑하지 않아도 좋다는 것이 아님을.
그리고 나는 배웠다.
아무리 내 마음이 아프다고 하더라도 이 세상은
내 슬픔 때문에 운행을 중단하지 않는다는 것을
타인의 마음에 상처를 주지 않는것과
내가 믿는 것을 위해 내 입장을 분명히 하는것.
이 두가지를 엄격하게 구분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나는 배웠다
사랑하는 것과 사랑을 받는것을.
-샤를르 드 푸코-
가족의 탄생이 좋았던 이유는 피가 섞이지 않아도 가족이 될 수 있는 그런 모습이 아름다워보였다. 워낙 우리 소리언니가 연기를 잘하는 것도 있지만. 이들이 가족이 된것처럼 내 친구들과 나도 framily라고 생각했다. 봄방학이 끝나고 나서도 계속 머리속이 복잡했던 것은 과연 내가 이렇게 느끼는 처럼 다른 친구들도 그렇게 느끼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 나는 내가 생각하는 것, 내가 가지고 있는 고민도 털어 놓았지만, 모두 같이 그럴 기회도 별로 없었던 것 같고. 뭔가가 영원하다고 말하려면 굉장한 믿음이 있어야 겠지만, 그래도 난 친구들과의 우정은 영원할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내가 파리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환상은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인지 모르겠다. 아무래도 8학년때 불어를 처음 들었을 때 시작된 것 같기도 하고, 유치원 다닐 때 아빠가 취재하러 파리에 가셨을 때 nonchalant한 포즈를 취한 사진 멀리 보이는 에펠탑을 보고싶다고 생각했을 때 시작된 것 같기도 하다. 스위스를 갔을 때도 독어권보다는 불어권이 훨씬 마음에 들었다. 건축양식도 더 정겹고, 사람들도 더 여유있어 보이고. 그리고 파리를 다녀온 사람들이 얼마나 좋았는지 얘기해 주면 '아, 정말 가볼만한 곳일 것 같아'라고 또 생각하고. 오빠말고는 파리가 안 좋았다고 한 사람이 없었다. 자유, 평등, 박애를 강조하는 나라이면서 인종차별이 심하고, 도시가 너무 더러웠다고 오빠는 말했다.
뭐 더러워도 뉴욕만큼 더럽겠지라고 생각했다. 내가 가지고 있는 환상을 직접 가보지 않고는 깨기 힘들 것 같다. 사랑해파리를 봤을때 미친듯이 가고 싶었다가 한동안 잠잠했는데 줄리 델피의 2 Days in Paris를 보고 다시 내 머리속에 파리 타령이 시작됐다. 파리에 가보고싶은 것보다도 한달정도, 된다면 조금 더 많이 렌트해서 살아보고 싶다. i don't know when this will be, since i'll be in korea for this summer. and i definitely want to go to kenya, uganda, cameroon, or south africa for development studies next yea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