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턴 미팅을 하는 날에는 조금 요일 개념을 회복하기도 하지만 대체로 매일이 무슨 요일인지 망각하고 살고있는 요즘이다. 그런데 오늘은 토요일, 6월 6일이라는 것을 정확히 알고 하루를 시작했다.
웨스트 빌리지에서 11기 효동이를 만나서 맛난 음식을 먹고 워싱턴스퀘어파크에 앉아 분수를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아이엠 레전드에서 좀비들이 윌스미스 집을 습격하기 위해 가로지르는 그 공원은 사실 내가 진짜 좋아하는 곳이다.) 그래도 앉아서 귀여운 멍멍이들 사진을 간간이 찍었다. 게임오버가 얼마나 좋은 동아리인지에 대해서 얘기하다가 게임오버에 속해서 좋은 점도 있었지만 안 좋은 점도 있었다는 얘기를 들어서 새로웠다. 후배님들 5년연속 도민체전 우승, 가능할까요?
메모리 키퍼라는 이름의 사진관에 필름을 맡긴 뒤 빌리지를 조금 더 방황하다가 조조와 함께 인턴 프로그램 리더중 하나인 조라바(이름 참 특이해)의 집 옥상파티에 갔다. 참 별 것 없었는데 미국애들 참 잘 놀아. 호스트인 조라바는 토론토 출신인데 경영대학원은 노스웨스턴을 나왔고, 프로젝트 런웨이 캐나다 엠씨해도 될만큼 진짜 예뻤던 부인도 토론토 출신이자 토론토 대학나왔다고 해서 진짜 신기했다. 플러스 아시아 언어 배우고 싶다고 말해서 마음에 들었던 브라운 대학에서 온 존도 토론토가 고향이라고 했다. 영화에서 나오는 것처럼 여름밤, 맨하탄 옥상위에서 보드카+쥬스를 마시며 public health, conservation, new york zoos, top 3 animals to see first at zoos, graduate schools, nyu vs columbia, basketball vs hockey, buffalo wings (st louis!!) 등에 대해서 얘기했다는게 좀 실감이 안나는 오늘. 돌아와서는 무한도전 궁특집을 보면서 다산 정약용 선생님을 생각하고, 그래 오늘은 현충일인데, 라고 생각했다.
나름 신나는 하루였는데 공부는 대체 언제?
아래 포스팅은 한참 센티해져서 썼는데 <무릎팍도사> 김중만 사진작가 편을 보면서 정신차렸다. 중학교때 아프리카로 온가족을 데리고 간 아버님 덕분에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온 김중만씨는 내가 가고 싶어하는 아프리카뿐만 아니라 프랑스에서 공부를 하고 한국에 돌아가서도 두 번이나 추방당했으나 그래도 조국이 밉지 않단다. 이 분이 계속 한국에서만 교육을 받았다면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사진을 찍을 수 있었을까? 이해와 토론보다는 암기와 강의 위주인 교육체재안에서. 아버지는 생을 아프리카에서 마치신것 같던데 김중만씨와 함께 사는 가족은 어떤지 궁금해졌다.
내가 아프리카에 자꾸 눈이 가는 건, 사람도 중요하지만 환경을 생각하게 되는 이유를 한마디로 표현할 수 없다. 누구를 사랑하는 이유를 한마디로 설명할 수 없는 것처럼. 사회의 기대, 사회가 내게 바라는 것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내가 꿈꾸는 세상, 내가 바라는 것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으면 좋겠다. 20대인 지금이 제일 자유로울 수 있는 시기일지도. 그 꿈을 향해 가는 동안 나와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사람과 함께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어떤 사람들은 배우자가 같은 분야에 종사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하지만 (뭐 예를 들어 내가 경제, 환경쪽 연구하니까 상대방은 미술, 건축, 교수가 아닌 다른 직업 등등) 나는 환경에 관심있는 사람이면 좋겠다. 같은 주제를, 문제를 함께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건 신날 것 같다. 마리 큐리와 피에르 큐리 부부가 함께 plutonium과 radium을 발견한 것처럼. 우리는 sustainability를 위해서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는거얌. 그리고 물론 서로를 아끼고 사랑해주고.
아무튼, gre 공부하기 싫어서 딴청피지 말고, 꿈을 생각하자- 김중만씨도 자유영혼, 나도 자유영혼. we are all a little weird and life's a little weird, and when we find someone whose weirdness is compatible with ours, we join up with them and fall in mutual weirdness and call it love.
2005년에 나와 ETS의 인연은 끝난 줄 알았는데, 대학원이 있다는 걸 잊고 있었다. 사실 대학교 졸업하고 바로 대학원에 안 가고 싶다가도, 가야겠다고 생각이 들기도 해서 4학년 1학기에 지원을 하지 않더라도 시험은 미리 봐놓기로 했다. 토플과 달리 GRE는 유효기간이 5년이니까. SAT보다 조금 더 어려운 단어들을 머리속에 넣고 있는데 vernal이라는 단어가 봄과 관련된 뜻이라는 걸 처음 알았다. 내가 제일 좋아하지만, 또 제일 잔인한 계절인 봄. 뉴욕은 아직 봄이다. washington square park 공사 끝나고, 분수틀기 시작해서 좀 많이 신났다.
어제 사진수업 첫 날이었는데 재밌었다. 화려한 DSLR 가져온 사람들이 부럽기도 했지만 내 Single Lens Reflex 카메라도 좋다. 2달 동안 이뤄지는 이 수업 내내 빛 조절을 익히기 위해 흑백필름만 사용한다고 하니 신기한 경험일 것 같다. 다들 왜 SLR 카메라 다루는 걸 배우는지 얘기했는데, 내년 남아프리카에서 열리는 월드컵에 남편이랑 같이 가기 때문에 역동적인 사진을 잘 찍을 수 있는 DSLR 작동법을 익히고 싶다는 메간과 남편과 1년동안 세계일주를 할 거라서 문화/풍경 사진을 잘 찍고 싶다는 크루티는 모든 사람이 부러워했다. 역시 뉴욕엔 부자가 많아. 난 로모카메라 가지고 재미있게 찍었는데 결과물이 더 잘 나오도록 하고 싶어서 배우는 거라는 소박한 이유를 나누었다. 인물, 문화, 풍경사진 찍는 걸 좋아한다고. 다 배우고 나면 카메라 욕심이 더 생길 것 같은데, 무소유는 가능하지 않은 것인가.
도쿄, 서울행 비행기표 샀다. 도쿄는 7월 24일, 서울은 8월 14일 오후 7시반 도착. 일본은 한 번도 가본적 없는데 많이 궁금하지는 않다. 14일에 떠나는데 8월 15일에 일본은 뭐하나. 우리는 광복절 행사하지만, 걔네는 신사가서 "훌륭한 장군"들에게 참배하나. 빨리 한국가고 싶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제일 많이 있는 곳은 한국인데, 내가 알지도 못하는 개도국 사람들에 대한 공부/연구/돕겠다고 인턴하고, 연구하고, GRE 공부하고 있으니 뭔가 아이러니하다는 생각도 들고. 빨리 돈 벌어서 나의 헌책방사업을 빨리 시작하는게 좋을까. 요즘 한국에서 일어나는 일 때문에, 한국 진짜 답이 없다고, 답답하다고, 별로라고 하기도 하지만, 멀리서 방관자가 되버리는 것 같아서 돌아가서 활발한 사회구성원이 되고 싶다는 생각도 들고. 별 생각을 다한다.
우선, 1년있다 보자. 여기까지 왔으니.
information diffusion is beneficial for economic growth but the lack of freedom of press or opinions could contribute to information asymmetry
deterioration of democracy and yet economic growth
which should prevail? should democracy be satisfied if doing so will lead to economic growth?
how much growth are we hoping for? especially when human desires are illimitable?
what should our values be centered upon?
what kind of qualities do we want in a leader? and how come almost no korean politician seem to embrace some values? and if any has some values that he or she makes his or her decisions upon, why is he or she unknown to the public?
신부라고 완전하게 성인일 수 없고 그저 사람일 때가 있듯이 대통령도 사람이다.
자살이던지 타살이던지 사고였던지 사람이 죽은 것이다.
그도 사람이었다.
그에게 자살을 권했던 연세대 명예교수 김동길, 전 대통령의 죄에 대한 형량은 사형 뿐이라고 말했던 조갑제는 사람의 목숨을 어떻게 그렇게 쉽게 여길 수 있냐고 묻고 싶다.
수사를 계속 했으면 한다. 유서에도 그렇고 사석에서도 돈 문제는 깨끗했다고 말씀하셨고, 내가 가본 봉하마을 자택에도 사치스러운 장식하나 없이 책으로 온통 가득했다.
그런분이 유서 일부분에 이렇게 쓰셨다고 한다.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신세를 졌다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받은 고통이 너무 크다.
앞으로 받을 고통도 헤아릴 수가 없다.
여생도 남에게 짐이 될 일 밖에 없다.
건강이 좋지 않아서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
책을 읽을 수도 글을 쓸 수도 없다.
너무 슬퍼하지 마라.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
미안해하지 마라.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운명이다.
화장해라.
그리고 집 가까운 곳에 아주 작은 비석 하나만 남겨라
오래된 생각이다."
삶과 죽음은 하나지만, 그래도 지금 가시지는 말지.
시간이 흐르면 대통령으로서 정당한 평가를 받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컬럼비아 교수님들도 이 분을 높게 평가하셨고, 한국 사람들이 왜 그렇게 비난만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하셨다. (아마도 편파적인 언론 때문이겠지) 반면에 국민의 세금과 정부의 인력을 전 정부 주요인사들을 사법처리 하기 위해 쓴 대통령, 시멘트를 써서 국토 정비를 하는 것이 지속가능한 개발이라고 생각하는 대통령에 대해서는 어떤 평가가 이뤄질까.
아, 별이 졌다.